파리와 근교 38

파리 필하모니 Philharmonie de Paris

한 달에 두 번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파리에 와서 새로 생긴 취미다. 라디오프랑스에도 가끔 가지만 홈그라운드는 파리 필하모니다. 파리필하모니의 피에르 불레즈 홀은 내가 가본 공연장 중에서 가장 음향이 좋은 곳이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시야가 가리지 않고 무대가 잘 보이는 것도 이 홀의 장점이다. 차를 가져와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면 바로 공연장으로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일부러 건물 밖으로 나간다. 입구에서 아름다운 건물을 향해 걸어가는 것부터 이미 공연 감상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들뜬 사람들을 따라 공연장 안으로 들어간다. 차가운 느낌을 주는 금속 재질의 외부와는 달리 공연장 내부는 부드럽고 따듯한 느낌이다. 친구들과 온 사람들은 바에서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 온 사람들은 CD..

생클루 공원 Domaine National de Saint-Cloud

단풍철이 찾아왔다. 원래 계획은 부르고뉴로 포도밭 단풍을 보러 가는 것이었지만, 가족들 모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취소했다. 대신 가까운 생클루 공원으로 소풍을 다녀왔다. 생클루 공원은 황제들이 머물렀던 성이 있던 자리다. 비록 성은 1870년 프로이센 전쟁 중에 파괴되었지만, 성터와 정원, 숲은 여전히 남아 파리 시민들에게 쉼터가 되고 있다. 파리에서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어 가족들과 주말에 자주 찾는다. 공원 입장료는 없지만, 차를 가지고 들어가려면 7유로를 내야 한다. 파리의 주차료를 생각하면 7유로는 공짜나 다름없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나뭇가지 숲'은 공원 안쪽까지 들어가야 해서 항상 차를 가지고 간다.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하고, 숲에서 나뭇가지를 모아 나무집을 만들고, 지겨워지면 숲..

지베르니 Giverny

올 여름 지베르니에 갔다가 기념품샵에서 '지베르니의 사계절' 사진책을 본 아내가 말했다. "여기 매 계절마다 왔어야 했는데!" 사진 속 지베르니는 계절마다 다른 모습이었다. 봄에는 튤립이 피고 등나무 꽃이 일본식 다리 주변을 덮는다. 여름에는 가장 많은 꽃이 피어서 화려하고, 가을에는 정원이 금빛과 붉은색으로 물든다. 겨울에는 잠들어 있는 듯한 연못 위로 눈이 덮여 있었다.  그래서 가을의 지베르니를 다시 찾아갔다. 모네의 집을 덮은 담쟁이 덩굴은 붉게 변했고, 연못 주변의 나무에도 단풍이 들었다. 정원에는 여름에 왔을 때 피어있던 꽃들은 모두 지고, 대신 보라색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가을 꽃은 여름 꽃보다는 작고 수수했지만 단풍과 잘 어울렸다.  정원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지베르니 인상주의 미술..

루브르 박물관 Sully관 308호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항상 이란의 유물이 전시된 SULLY관 308호를 찾는다. 내가 지금까지 여행을 가본 나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이란이다.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에 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설렌다. 루브르의 이란 전시실에 들어서면 이란 여행의 추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 이곳에는 이란의 고대 도시 수사에서 가져온 유물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수사는 기원전 4천년 엘람인들이 건설한 도시다.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 제국의 황금기를 통치한 다리우스 1세가 이곳에 거대한 궁전을 건설하였다. 하지만 페르시아 제국은 겨우 2세기 밖에 가지 못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당한다. 그 후 수사 궁전은 파괴되고 잊혀져 사막의 모래 속에 묻힌다. ​ 궁전은 천년이 넘게 흐른 뒤1884년부터..

미슐랭 레스토랑도 할인이 되나요? - Table Bruno Verjus

파리에 온 이후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아내와 함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다. 사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정통 서비스를 온전히 누리려면 저녁에 가야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저녁엔 갈 수가 없다. 게다가 보통 점심 메뉴가 저녁보다 훨씬 저렴해서, 단품 메뉴를 100유로 정도에 즐길 수 있다. 여전히 매우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미식의 도시에서 살고 있으니 1년에 한 번쯤은 사치를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합리화할 만한 수준이다. 결혼 11주년 기념일에는 Table Bruno Verjus를 예약했다. 해산물을 중심으로 한 모던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오픈 키친 구조라 셰프와 주방 팀이 요리하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어 흥미로울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레스토랑에 도착해 메뉴를 보고 당황했다. 메뉴판에..

파리 패럴림픽

내가 사는 도시에 올림픽이 열리는 행운이 찾아왔다. 올림픽 경기는 티켓 값이 너무 비싸서 몇 경기 못봤지만, 대신 패럴림픽 경기에 많이 찾아갔다. 올림픽 경기보다 훨씬 가격이 저렴한 것도 있지만, 패럴림픽 경기에 대한 궁금증도 컷고, 올림픽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파리 올림픽은 비용을 절감하고 탄소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새로운 경기장을 건설하지 않는 방침을 세웠다. 대신 시내 광장에 임시 경기장을 설치하거나, 대형 전시장을 경기장으로 개조해서 사용했다. 그래서 에펠탑 스타디움, 앵발라드 스타디움, 그랑팔레 스타디움 같은 멋진 경기장들이 탄생했다. 랜드마크 경기장들은 패럴림픽 기간에도 빈자리를 찾기 힘들만큼 많은 관중들이 찾았다.  패렬림픽 경기는 올림픽 경기와 분위기..

파리 소르본 대학 견학, 유럽 문화유산의 날

1년에 한번 있는 유럽 문화유산의 날에는 평소에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는 유적지나 공공기관, 역사적 건물이 무료로 공개된다. 엘리제궁이나 국회의사당 같은 주요 기관 뿐만 아니라 동네 시청까지 다양한 곳에 방문할 수 있다. 우리는 올해 소르본대학교에 가보았다. 먼저 Pierre and Marie Curie Campus 를 방문했다. 이곳은 캠퍼스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과학 학과들이 모여있는 캠퍼스다. 1970년대에 설립되어 고풍스러운 메인 캠퍼스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광물박물관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오후에나 문을 연다고 해서 대신 지질학과 도서관을 방문했다. 화산과 바다에 대한 책, 고지도를 구경하고 엽서와 책갈피를 선물로 받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게시판..

파리 근교 몽모헝시 숲 - Forêt de Montmorency

일요일. 점심을 먹고 귀찮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차에 태워서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몽모헝시 숲 Forêt de Montmorency에 갔다. 날씨가 좋아 나들이 온 사람들이 많았다. 중세 시대에 지어진 작은 성, Château De La Chasse 앞 잔디밭에는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이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성을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 나무 사이로 바스럭거리는 소리가 자꾸 나서 긴장했는데, 알고 보니 밤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밤 껍데기를 까보니 동글동글 작고 귀여운 알밤이 들어있었다. 아이들에게 발로 밤송이를 까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숲을 돌아 다니며 정신없이 밤을 주웠다. 제일 크고 잘 생긴 밤 몇 개를 골라 가방에 넣고 나머지는 다시 숲에 던져놓았다. 야생 동물이 있을 것 같..

오베르 쉬르 우아즈 Auvers-Sur-Oise

작년 이맘때 파리에 혼자 살던 시절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갔었다. 반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작은 마을이다. 마을 뒤로 올라가면 그가 을 그린 밀밭이 있다. 나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밀밭을 봤는데, 회색 구름 아래 거대하게 펼쳐진 노란 물결에 완전히 빨려 들었다. 그 후로 일 년 동안 프랑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더 큰 밀밭을 수도 없이 많이 봤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다. 그래서 올해 가족과 다시 가봤다. 노르망디 여행을 가는 길에 들릴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밀이 노랗게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황금 들판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마을에 도착. 입구에 차를 세우고 바로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밀밭이 있어야 할 곳에 옥수수가 있다. 길은 잘못..

지앙 Gien, 바르비종 Barbizon

결혼할 때 샀던 커피잔 세트를 전부 깨 먹고 짝도 맞지 않는 머그잔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빨리 치우고 아이들을 재워야 하니 예쁜 커피잔에 담고 씻고 할 여유가 없기도 했다. 이제 아이들도 좀 커서 여유도 생겨서 커피잔을 새로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침 루아르 강변에 있는 지앙 Gien이라는 마을에 가면 프랑스 그릇 브랜드 지앙의 아울렛에 있다고 해서 소풍 겸 가봤다. 파리에서 지앙까지는 차로 2시간 정도 걸렸다. 그릇을 여기저기 수북하게 쌓아놓고 파는 본격 아울렛이었다. 그런데 분위기와는 달리 가격은 싸지 않았다. 정가가 비싸서 할인을 한 가격도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오히려 비싸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사고 싶은 것은 너무너무 많아서 가격이 부담되지 않았으면 잔뜩 들고 왔을지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