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필하모니에서 프랑스 작곡가 Arthur Honegger의 오라토리오 화형장의 잔다르크 Jeanne d'Arc au bûcher 연주회가 있었다. 잔다르크의 재판과 처형 과정을 극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처음 접하는 작곡가의 낯선 곡이지만, 잔다르크 역할에 이름을 올린 배우를 보고는 주저 없이 예매했다.
그러니까 연주회를 보러 갔다기 보다 마리옹 꼬띠아르를 보러 간 셈이다. 이 작품은 오케스트라와 합창, 그리고 내레이션으로 구성이 된다. 오라토리오인데 독특하게도 주인공인 잔다르크는 노래가 아니라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알고 보니 마리옹 꼬띠아르는 과거에도 이미 여러 차례 이 극에서 잔다르크 역할을 연기한 베테랑이었다.
연주는 훌륭했다. 알랭 알티놀루 Alain Altinoglu 가 지휘한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은 극의 전개에 따라 다채로운 연주를 선보였다. 시민들의 목소리와 천상의 목소리를 노래한 합창단도 좋았다. 희망을 노래하는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러나 이 날의 주인공은 단연 마리옹 꼬띠아르였다. 프랑스의 왕을 위해, 프랑스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영웅의 기개가 느껴졌고, 화형장 장면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 소녀의 처절함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신을 찾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객석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래이션만으로도 이렇게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연주가 끝난 후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려놓았지만, 객석의 아무도 박수를 치지 못했다. 마리옹은 눈물을 흘렸고, 관객들은 지휘자가 인사를 할 때까지, 10초 가까이 침묵하며 여운을 느꼈다. 이 날 함께한 연주자들과 다른 관객들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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