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협력사 담당자가 바뀌어서, 출장 중에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다. 사실 출장 첫날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안 갈까 고민했지만, 중요한 자리라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
우리 회사 직원들과 저녁을 먹을 때는 보통 본식과 디저트만 간단히 먹지만, 다른 회사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식전주부터 전식, 본식, 후식까지 풀코스로 먹는다. 식전주로 무알콜 칵테일을 주문했더니,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오늘은 무알콜로 갈 거야.”
“그래도 와인은 마실 거지?”
“아니, 오늘은 정말 노알콜.”
“와인은 와인이지. 알콜이 아니야.”
“뭐야, 그런 게 어딨어.”
“프랑스에 있지.”
전식으로는 타파스를 먹었다. 프랑스 남서부 지방은 스페인과 가까워서 타파스를 파는 식당이 많고, 전식으로 타파스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도 흔하다.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맛볼 수 있어 좋았다.
본식은 훈제 이베리코 돼지고기와 저온 조리한 문어 중에서 고민하다가 돼지고기를 주문했는데, 돼지고기가 크림소스와 함께 나왔다. 고기는 딱 맞게 익어서 맛있었지만, 크림소스와 함께 먹기엔 느끼해서 절반밖에 먹지 못했다. 메뉴를 꼼꼼히 읽는 게 중요하다. 문어를 맛있게 먹는 다른 사람들이 살짝 부러웠다.
디저트까지 먹는 데 총 3시간 반이 걸렸다. 그 덕분에 출장 때마다 만나도 일 이야기만 했던 분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가족 이야기, 취미, 은퇴 준비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며 한층 가까워졌다.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는 긴 식사 동안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워낙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3시간 떠더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적절히 반응만 해주면서 듣고만 있어도 된다.
무알콜 선언을 했지만 크림의 느끼함을 없애려 레드 와인을 한 잔 마셨고, 보스가 화이트 와인이 정말 훌륭하다며 맛만 보라고 권해서 한 잔을 더 마셨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술을 강요하지 않는데......
호텔에 돌아와 양치만 하고 바로 쓰러져 잤다. 프랑스식 회식은 늘 즐겁지만, 정말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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