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파리에서 출발해서 점심 전에 쾰른에 도착했다. 독일에 왔으니 가장 독일적인 식당인 비어홀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대성당 근처에 위치한 Gaffel am Dom 을 예약해두었다. Gaffel은 맥주 브랜드고 Dom은 성당이니 '성당에 있는 Gaffel'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독일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학센 Schweinshaxe 과 소시지를 주문하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윤수에게는 스테이크를 시켜주었다. 소시지와 스테이크는 프랑스에서도 먹을 수 있는 평범한 맛이었으나 학센은 달랐다. 껍질은 칼을 대면 부서질 만큼 바삭한데 속은 부드러워서 손으로도 쉽게 찢어졌다. 곁들여서 나온 감자도 훌륭했다.
그리고 맥주. 종업원들이 맥주가 담긴 200ml 잔을 수십 개씩 들고 테이블 사이를 바쁘게 오간다. 빈 잔이 보이면 바꿔주는 것이 기본.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으면 빈 잔 위에 컵받침을 올려놓는다. Gaffel Kolch 맥주는 깔끔하고 청량해서 쉽게 쉽게 넘어갔다. 여름에 마시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대성당을 둘러봤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은 쾰른 대성당은 도시 밖에서도 쉽게 띄었다. 성당의 외벽이 검은색인 것이 특이했다. 성당 내부를 둘러본 뒤 촛불을 켰다. 프랑스의 성당은 초 가격이 1~2유로 정도로 정해져 있는데, 독일은 정해진 가격이 없었다. 어느 쪽이 더 많은 기부금을 받을지 궁금해졌다.
아내와 아이들은 성당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아내는 성당을 그리고 지수는 멋진 괴물들의 그림을 그렸다. 윤수는 성당 앞 광장에서 아티스트들이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전 세계 나라의 국기를 그린 작품을 따라 그렸다. 나는 그림에 취미가 전혀 없지만 아내가 그림을 좋아해서 항상 스케치북을 들고 다닌다. 이제는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쾰른에 온 목적은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이다. 대성당 바로 옆에 '쾰른 대성당 크리스마스 마켓 Weihnachtsmarkt am Kölner Dom'이 있었다. 마켓 중앙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있고 주변에 수공예품과 음식을 파는 부스들이 늘어서 있다. 마켓 장식도, 파는 물건들도 프랑스의 크리스마스 마켓보다 훨씬 예뻐서 독일이 크리스마스 마켓의 원조임을 알 수 있었다. 부스에서 파는 물건들은 판매자가 직접 만든 것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크리스마스 쿠키 커터를 샀다.
마켓 구경을 하고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 Wallraf-Richartz Museum에 갔다. 중세 미술부터 20세기 초반의 작품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3층에서는 모네, 피사로, 시슬리 등 익숙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볼 수 있었고, 2층의 바로크 시대 작품들도 좋았다.
특별전시실에서는 Susanna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서양화에서 많이 그려진 내러티브인 '수잔나와 장로들'을 모아놓은 전시였다. 미투 운동과 연계하여 수잔나가 장로들이 목욕하는 자신의 모습을 훔쳐보는 상황에서 해야 할 말을 적는 종이가 비치되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그림의 의미와 미투 운동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미술관을 나오니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구시가지의 Alter Markt와 Heumarkt 광장에 거쳐서 조성된 Heinzels 크리스마스 마켓에 갔다. Heinzels은 쾰른의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요정이라고 한다. 요정 콘셉트의 마켓인 만큼 요정 장식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따듯하게 데운 사과주나 와인을 담아 파는 도자기 잔에도 요정이 그려져 있다.
Heinzels 크리스마스 마켓의 하이라이트는 중앙의 아이스링크다. 크리스마스 장식 아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다.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타보고 싶어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대신 우리나라 감자전과 똑같은 맛의 카토펠푸퍼 Kartofelpuffer 를 사 먹었다.
맥주를 한 번 더 마시고 싶었으나 소시지와 감자와 돼지고기를 또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녁으로는 한국 마트에 들러 컵라면과 김치를 사서 호텔 방에서 먹었다. 맥주는 호텔 식당에 내려가서 사 왔다. 맥주 한 잔을 방에 가져간다고 하자 바텐더가 물었다.
"한 잔이요? 또 내려오지 말고 두 잔 들고 가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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