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파리와 근교 40

파리 지하 묘지 카타콤 Catacombes de Paris

파리 카타콤(Catacombes de Paris)은 파리 시내에 위치한 지하 묘지다. 18세기 후반, 파리시는 주요 공동묘지들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위생 문제가 심각해지자, 묘지를 폐쇄하고 유골을 이장하기로 결정했다. 수백만구의 유골이 당시의 지하 채석장 터널로 옮겨졌다. 현재는 일부 구간이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지하 20m 깊이까지 계단을 따라 내려가 좁고 어두운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파리의 과거를 무주하게 된다. 전염병, 전쟁, 기근 등 책에서 봤던 역사적인 사건들이 이곳에는 유해의 형태로 실재한다. 지상의 아름다운 파리와 대비되는, 지하의 어둡고 무거운 풍경과 '600만 구' 라는 압도적인 숫자는 방문객들이 말을 잃게 한다. 카타콤으로 이장된 유골들은 원래 있던 묘지별로 구분되어 쌓였다..

파리 샹젤리제 극장 - 파리 챔버오케스트라와 키릴 게르스타인

갑자기 모짜르트 피아노협주곡 20번이 듣고 싶어졌다. 혹시 1월 중에 공연이 있을까 찾아봤는데, 마침 파리 샹젤리제 극장 Théâtre des Champs-Élysée 에서, 바로 당일 저녁에 공연이 있었다. 이런 행운이! 그렇게 해서 샹젤리제 극장에 가게 되었다. 이 날 공연에는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이 무려 세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직접 연주하고 지휘했다. 오케스트라는 파리 챔버오케스트라가 맡았다. 파리챔버오케스트라는 살리에리의 라 폴리아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더해서 총 네곡이 연주된다. 샹젤리제 극장은 처음 가봤다. 내외부가 모두 화려하기보다는 절제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천장화와 조명도 아름다웠다. 1913년 건축되었을 당시에는 꽤 혁신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

파리필하모니 공연 - 화형장의 잔다르크 Jeanne d'Arc au bûcher

파리필하모니에서 프랑스 작곡가 Arthur Honegger의 오라토리오 화형장의 잔다르크 Jeanne d'Arc au bûcher 연주회가 있었다. 잔다르크의 재판과 처형 과정을 극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처음 접하는 작곡가의 낯선 곡이지만, 잔다르크 역할에 이름을 올린 배우를 보고는 주저 없이 예매했다. 그러니까 연주회를 보러 갔다기 보다 마리옹 꼬띠아르를 보러 간 셈이다. 이 작품은 오케스트라와 합창, 그리고 내레이션으로 구성이 된다. 오라토리오인데 독특하게도 주인공인 잔다르크는 노래가 아니라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알고 보니 마리옹 꼬띠아르는 과거에도 이미 여러 차례 이 극에서 잔다르크 역할을 연기한 베테랑이었다. 연주는 훌륭했다. 알랭 알티놀루 Alain Altinoglu 가 지휘한 ..

디즈니랜드 파리

회사에서 복지 혜택으로 디즈니랜드 티켓을 받았다. 12월 4일에만 사용이 가능한 티켓. 12월에 디즈니랜드라니.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아이들이 아빠가 디즈니랜드 티켓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아이들 학교 오전 수업을 마치자마자 데리고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활짝 웃으며 달에서 걷는 우주인만큼 가벼운 발걸음으로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안 오겠다고 했던 생각이 좀 미안해졌다. 파리 디즈니랜드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파크와 디즈니랜드 파크로 나뉘어져 있다. 스튜디오 파크에서 가장 먼저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벤져스 어셈블리를 탔다. 빠른 속도로 출발하며 360도 회전하는 롤러코스터라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어..

프랑스식 회식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협력사 담당자가 바뀌어서, 출장 중에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다. 사실 출장 첫날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안 갈까 고민했지만, 중요한 자리라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 우리 회사 직원들과 저녁을 먹을 때는 보통 본식과 디저트만 간단히 먹지만, 다른 회사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식전주부터 전식, 본식, 후식까지 풀코스로 먹는다. 식전주로 무알콜 칵테일을 주문했더니,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오늘은 무알콜로 갈 거야.”“그래도 와인은 마실 거지?”“아니, 오늘은 정말 노알콜.”“와인은 와인이지. 알콜이 아니야.”“뭐야, 그런 게 어딨어.”“프랑스에 있지.” 전식으로는 타파스를 먹었다. 프랑스 남서부 지방은 스페인과 가까워서 타파스를 파는 식당이 많고, 전식으로 타파스..

동네 시장 Marché des Sablons

우리 동네에는 매주 수, 금, 일요일 오전에 장이 선다. 야채, 과일, 생선, 고기, 치즈, 빵 등 식료품뿐만 아니라 생활용품과 크레페 같은 간식거리까지, 없는 것이 없는 시장이다.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마트보다 더 신선한 농수산물을 살 수 있다. 아내와 굴을 사러 시장에 갔다. 굴 파는 아주머니가 아내에게 ”당신이 깔거에요?“ 물었다. 굴을 까달라고 하면 수고비가 조금 더 붙는다. 아내가 ”아니요. 이 사람이 깔 거예요. “ 대답하니 아주머니가 웃으며 덤으로 굴을 하나 더 얹어 주었다. 생선 가게에서 아내가 먹고 싶었던 성게와 둘째가 좋아하는 가자미를 사고 야채 가기에 갔다. 슈퍼마켓에서 야채를 살 때는 내가 원하는 만큼 집어서 무게를 재고 계산하고 나오면 된다. 말은 한마디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안드라스 쉬프가 연주하는 브람스

헝가리 출신의 두 노신사, 이반 피셔와 안드라스 쉬프를 한 무대에서 만났다. 오늘의 주제는 헝가리 사람들이 연주하는 브람스.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과 교향곡 1번을 연주했고, 안드라스 쉬프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함께 했다. 브람스는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드 레메니와의 연주 여행을 통해 헝가리 집시 스타일의 음악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를 반영하여 헝가리 무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이날 공연에서는 교향곡으로 편곡된 헝가리 무곡 1번과 11번이 연주되었다.  이반 피셔는 그 변화무쌍한 리듬과 템포를 '춤을 추며' 지휘해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는 안드라스 쉬프와 오케스트라가 뛰어난 호흡을 만들어내며 서정적이면..

파리 튈르리 공원 크리스마스 마켓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튈르리 크리스마스 마켓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마켓의 줄지어 늘어선 음식 부스에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겨울 음식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라클렛, 타르트 플람베, 슈크르트, 소시지, 양파 수프, 타르티플레트 등등. 공원 곳곳에 고소한 치즈 향이 퍼졌다.  우리는 한 바퀴 돌며 구경한 끝에 타르티플레트를 먹기로 했다. 타르티플레트는 삶은 감자에 베이컨과 양파를 볶아 넣고, 르블로숑 치즈를 얹어 만드는 요리다. 우리 아이들은 여기 트러플 버섯이 추가된 타르티플레트를 먹고 싶다고 해서, 찾느라 시장을 두 번이나 돌아야 했다. 점심을 먹은 후, 후식으로 추러스를 사 들고 마켓을 다시 둘러봤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파는 물건들은 해마다 비슷비슷해 조금 식상하다. 가끔 눈에 띄는 괜찮아 ..

2024년 파리 첫 눈

파리에 첫눈이 내렸다. 첫눈은 보통 소복소복 내려주는 법인데, 어제의 눈은 꽤 난폭했다. 500원짜리 동전만 한 커다란 눈송이들이 강풍에 휘말려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찾아보니 이번 눈은 폭풍 카에타노가 동반한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폭풍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단어 tempête 를 배웠다. 영하의 날씨에 바람에 휘날리는 눈은 낭만이라기보다는 시련에 가까웠다. 하지만 하교길 어린이들은 길가에 주차된 차 위에 쌓인 눈을 발견하고는 신이 났다. 몇 시간 후면 모두 녹아버릴 걸 알기에, 옷이 다 젖고 볼이 새빨갛게 될 때까지 놀게 해주었다. 아빠는 추위에 떨었지만, 아이들이 첫 눈 오는 날 파리의 추억을 간직하기 바라며.

보졸레 누보 Beaujolais Nouveau 2024

11월 셋째 주 목요일. 보졸레 누보 Beaujolais Nouveau가 출시되었다. 보졸레 누보는 보졸레 지역에서 그 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햇와인이다. 원래는 보졸레에서 와인 수확을 축하하는 지역 축제를 위해 만들어 마시던 것이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나았고, 지금은 한국을 비롯한 해외로도 수출되고 있다. 내 주변의 프랑스 사람들은 대부분 보졸레 누보를 싫어한다. 지나친 마케팅 이벤트다, 와인의 영혼을 상실했다, 덜떨어진 와인이다, 보졸레 누보의 인기가 진짜 보졸레 와인의 품질을 망치고 있다, 보졸레 누보 데이를 맞추기 위해 항공 수송하면서 과도한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혹평이 쏟아진다. 하지만 나는 외국인이니 올해도 마트에서 '관광객용 와인'을 한 병 샀다. 프랑스에 온 첫 해에는 보졸래 누보를 마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