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행

2023 알프스 스키 여행 - 티뉴 Tignes

커피대장 2024. 1. 5. 18:21

프랑스에 온 이후로 아이들 크리스마스 방학 기간마다 스키 여행을 간다. 올해는 알프스에 있는 티뉴 Tignes 스키장에 다녀왔다. Tignes 스키장은 이웃한 발디제르 Val d'Isere 스키장과 묶어서 운영한다. Tignes - Val d'Isere 에는 90개의 리프트와 156개의 슬로프가 있으며, 슬로프의 총 길이가 300km 넘는다고 한다. 시즌 내내 스키를 타도 모든 슬로프를 타보기 힘들만한 규모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그 중 아주 일부만 가볼 수 있었다.
 
Tignes 스키장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해발고도 때문이었다. 작년 스키 여행 때는 12월 말인데도 날씨가 춥지 않아 눈이 많이 녹고 마지막 날에는 비까지 왔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스키장을 선택했다. Tignes 스키장은 해발 3456미터 1550미터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우리가 머무른 마을은 해발 2100미터에 있었다. 작년에 갔던 La Toussuire보다 500m 높은 곳이다. 
 
안타깝게도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우리가 갔던 시기에 La Toussuire의 슬로프에는 눈이 없어 그린에 가까웠다고 한다. 작년에 La Toussuire의 스키 강사가 스키 시즌에 비가 온 것은 이번은 처음이라며 슬퍼했는데, 이제 알프스 저지대에서 12월의 비는 뉴 노멀이 되어가는 것 같다. 보주와 피레네의 스키장은 1월 초까지도 대부분 문을 열지 못했다. 겨울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안타깝고 걱정되는 현실이다.

 

 
 

 
 
프랑스의 스키 리조트들은 보통 토요일 체크인, 토요일 체크아웃으로 일주일 단위로 숙소를 임대한다. 스키 렌탈과 스키 패스도 같이 일주일 단위로 판매한다. 우리도 같은 시스템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우리가 출발한 토요일이 하필 크리스마스 전전날이었다. 프랑스의 크리스마스는 우리 설날과 비슷해서,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민족 대이동을 한다. 귀성객과 스키 휴가를 가는 사람들이 겹치면서 고속도로에는 최악의 교통 체증이 있었다. 파리에서 스키장 숙소까지 750km를 이동하는데 무려 14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힘들게 이동한 보람이 있었다. 전 주에 눈이 많이 와서 슬로프 상태가 좋았다. 그리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슬로프 위에서는 멀리 몽블랑까지 볼 수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하루에 1시간 30분씩 강습을 받았다. 매 년 ESF (Ecole du Ski Francais)에서 강습을 받고 있는데, 강사들이 전문적이고 친절해서 항상 만족하고 있다. 매 년 즐겁게 배우고 실력도 부쩍 늘고 있다. 윤수는 강사와 스노보드 파크에 가서 장애물과 램프를 타고, 지수는 스키 트릭을 잔뜩 배웠고, 아내는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강습 시간이 나에게는 자유 시간이다. 그 동안 나는 아이들과 같이 가기 힘든 상급 코스와 off-piste를 탔다.  강습 시간 외에는 다 같이 스키를 탔다. 이웃한 발디제르 스키장까지 오가며 이산 저산을 누비고 다녔다. 
 
 

 

 
 
프랑스의 스키장은 야간 운영을 하지 않는다. 해가 지는 4시 30분에 영업 종료다. 젊은이들은 저녁에 클럽이나 바에서 술을 마시면서 Apres-Ski (스키 뒷풀이)를 한다. 우리는 숙소에서 밥을 해 먹고 TV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쉬었다. 
 
스키장에서는 고칼로리 음식, 특히 치즈 요리를 많이 먹는다. 치즈를 완전히 녹여 먹는 퐁듀, 치즈를 조금씩 녹여 먹는 하클렛, 치즈에 와인을 넣어 오븐에 구운 몽도르, 파스타에 치즈를 덮은 타르티플레트...... 매일 치즈가 먹어질까 싶지만, 추위 속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면 먹어진다. 
 


 
 
 
Tignes 스키장의 정상은 해발 3456m다. 발클라레 Val Claret 마을에서 등반 열차 funiculaire를 타면 단숨에 3100m까지 오른다. 여기서 다시 케이블카로 갈아 타면 정상까지 갈 수 있다. 
 
정상에서 보는 알프스 산맥의 전망은 정말 멋지다. 그리고 여기서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순간에는 환호성이 절로 나올만큼 신난다. 
 
 

 
 

 
 

 
 

 
 
 
5일차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숙소 앞에는 구름이 가득 차서 한 치 앞을 보기 힘들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가니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이 나왔다. 덕분에 구름 위에서 스키를 타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눈이 쌓이자 슬로프의 경계가 의미가 없어졌다. 많은 스키어들이 새 눈을 밟으려고 슬로프 밖으로 나갔다.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슬로프 밖을 조금씩 넘나들며 파우더를 타는 느낌을 즐기게 해 주었다. 지수는 너무 신이 나서 "아하하하" 괴성을 지르며 스키를 탔다. 
 
마지막 날, 마지막 라이딩을 하고 내려와 지수가 1년을 어떻게 또 기다리냐며 울먹였다. 그래서 한번 더 타게 해줬는데 이번에는 펑펑 울며 눈물 젖은 스키를 탔다. 
 
우리 내년에 꼭 다시 오기로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