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행

2024 알프스 스키 여행 - 티뉴 Tignes

커피대장 2024. 12. 31. 18:16

작년에 이어 올해도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알프스의 티뉴 Tignes 스키장에 다녀왔다. 토요일에 리조트에 도착해서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 7일간 스키를 타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일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이틀간 무려 100cm가 넘는 눈이 쏟아졌다. 내 평생 이렇게 많은 눈은 본 적이 없었다. 대설경보에 눈사태경보, 강풍경보까지 겹쳐 고지대로 올라가는 스키 리프트는 모두 운행이 중단되었다. 

 

비교적 안전한 초중급 리프트 몇 개는 운영을 했지만, 강한 바람과 눈발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스키를 타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스키 강습은 취소되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눈보라를 뚫고 매일 강습을 받았다. 아이가 바람에 이리저리 휘청이는데도 스키 강사는 활짝 웃으며 '트릭을 연습하기 좋은 날씨'라고 말했다. 

 

 

 

 

 

 

셋째날 아침. 드디어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발이 아직 조금 날렸지만, 슬로프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딱 좋은 정도였다. 이제 이틀간 스키를 타지 못한 것을 보상받을 차례다.

 

오픈런을 하려고 아침 일찍 서둘렀다. 그런데 이틀간의 눈보라에 지친 아이들이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스키를 처음 배우고, 프랑스의 스키장만 경험한 아이들은 100cm나 되는 자연설에서 스키를 타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기회인지 알 리 없다. 하지만 한국의 스키장에서 아이스와 싸워가며 보드를 연마한 토종 보더 아빠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혼자 숙소를 나섰다. 

 

스키 리프트 앞에는 예상한 대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모두들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햇살에 반짝이는 눈을 가르며 라이딩을 시작했다. 슬로프 안보다 슬로프 밖에서 스키를 타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을 가르며 사사삭 보드가 나아가는 소리, 발 밑의 푹신한 촉감, 파우더 위를 미끄러지는 느낌은 슬로프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었다.  

 

2시간 정도 타고 나니 스키 리프트로 접근할 수 있는 곳에는 더 이상 'fresh powder'가 남아있지 않았다. 파우더를 사랑하는 스키어들은 스키를 어깨에 메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을 찾아 더 멀리까지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 정도의 열정도, 체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슬로프로 돌아왔다. 

 

 

 

 

 

 

Tignes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3,456m의 그랑 모트 Grande Motte다. 작년에 처음 왔을 때는 정상에서 스키를 타야 한다는 집착이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부담이 없었다. 한 번 올라가서 인증샷만 찍고 내려왔다.

 

사실 정상은 올라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바람이 많이 불고, 공기가 부족해 숨도 찬다. 슬로프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아, 전망이 좋은 것 외에는 스키를 타기에 특별히 좋은 점이 없다. 

 

올해는 대신 고도가 낮은 곳으로 많이 내려갔다. Tignes 스키장은 해발 1,550m에서 3,456m에 걸쳐 있는데, 우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해발고도 2,100m에 위치한 호수 마을에서 숙박을 했다. 마을 위쪽은 슬로프가 넓고 눈이 많아 스키 타기에는 최적이지만, 수목한계선 위라 온통 눈 밖에 보이지 않는다. 반면, 아래 쪽은 숲과 호수가 있어 풍경이 훨씬 더 아름답고 다채로웠다. 

 

 

 

 

 

 

 

 

 

 

 

티뉴는 인근 발디제르 Val d'Isère 스키장과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스키 패스로 두 스키장의 슬로프를 모두 즐길 수 있다. 두 스키장을 합치면 슬로프 갯수가 150개가 넘는다고 한다. 

 

작년에는 아이들이 아직 스키를 잘 타지 못해서 티뉴 안에서만 스키를 탔지만, 많이 늘어서 올해는 발디제르까지도 왕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발디제르에는 레드와 블랙 슬로프가 더 많고 코스도 좀 더 복잡했다. 숙련된, 본격적인 스키어라면 발디제르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매일  1시간 30분씩 프랑스 스키 학교 ESF에서 강습을 받았다. 아내와 둘째는 스키 강습을, 첫째는 보드 강습을 받았다. 스키 조는 올해 2번째 별을 받으려면 양 발을 평행하게 유지하며 턴을 하는 패러렐 턴을 완성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가 강습 시간 외에는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패러럴 턴을 하지 않아도 슬로프를 내려오는 데 큰 지장이 없으니, 어려운 기술을 익히는데 애쓰기보다는 재미있게 타는 것에 만족한 것이다. 

 

그 결과, 마지막 날 아내는 별 2개를 받았지만, 아이는 작년과 똑같은 별 1개를 받았다. 별 2개를 받지 못한 아이는 속상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 강사에게 작년에 이미 1개를 받았으니 올해는 2개를 줄 수는 없는지 물어봤지만, 강사는 '아직 그 정도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단호한 피드백을 주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아이는 정당한 노력을 해야 원화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스키장에서 일주일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마지막 날, 몽블랑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작년에는 한번만 더 타고 가고 싶다고 뗴를 썼던 아이들이 올해는 원없이 탔는지 미련 없이 산을 내려왔다. 

 

아침마다 오픈런을 하겠다고 서두르고, 눈보라 속에서 강습을 받고, 추위에 떨며 퐁듀를 먹고, 산장 휴게소에서 설산을 보며 핫초코를 마시고, 크리스마스 이브 불꽃 놀이를 보고, 자신있게 올라선 레드 슬로프에서 경사면 아래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던 순간까지 아이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몽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