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롬 Flåm에서의 둘째 날. 호스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스테가스테인 Stegastein 전망대에 올랐다. 이 전망대는 해발 650m 높이에 위치해 에울란피오르 Aurlandsfhord를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플롬에서 전망대까지 왕복하는 투어 버스를 탔다. 버스 기사는 좁고 가파르고 굽은 산길을 프로페셔널하게, 그러니까 매우 빠른 속도로 올라 20분만에 전망대에 도착했다. 단풍이 물든 산길 풍경이 아름다웠지만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스테가스테인 전망대는 절벽에서 약 30m 앞으로 뻗은 곡선 플랫폼으로 설계되어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전망대 끝이 투명 유리로 막혀 있어서 발아래로 펼쳐지는 피오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전망이 아름다운 화장실로 뽑혔다는 화장실은 문이 닫혀 있었다.
30분 정도 시간이 주어져 전망대 위쪽 숲길도 잠시 걸어 보았다. 누군가 밤새 캠핑을 하며 불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여름에 다시 와서 이 숲을 제대로 트레킹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Flåm 교회까지 트레킹을 했다. Flåm 교회는 17세기에 지어진 목조 교회로, 마을에서 걸어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작은 교회지만 가는 길이 아름답기 때문에 트레킹 코스로 인기가 많다.
경사가 거의 없어서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푸른 초원, 동물들, 농가, 멀리 산의 단풍과 폭포, 산허리에 걸린 구름까지 완벽한 그림이었다.
마을로 돌아갈 때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구글맵을 찾아보니 교회 옆에 있는 Hareina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있었다. Hareina 역은 오두막 하나뿐인 아주 작은 역이었고, 플랫폼도 따로 없었다. 혹시 몰라 오두막 벽에 붙어 있는 시간표를 다시 확인했다. Hareina 역 옆에 큰 X 표시와 함께 " The train stops on request. Please inform the train staff."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스탭에게 요청해야만 기차가 멈춘다고? 스탭이 대체 어디 있다는 거지?
잠시 당황하던 그때, 아내가 웃음을 터뜨리며 오두막 한쪽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가리켰다.
"Customers wishing to join the train at this station must give a clear signal to the driver."
기차 운전사에게 분명히 타겠다는 신호를 보내면 세워주겠다는 거지? 아이들에게 택시를 잡듯이 손을 흔들어서 열차를 잡아 탈거라고 설명해주었다. 신이 난 아이들은 기차가 언제 오냐며 연신 재촉했다. 멀리서 기차가 보이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손을 열심히 흔들었고, 기차는 천천히 멈춰 섰다. 기차 운전사는 웃으며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플롬 역에는 플롬스바나 Flåmsbana 철도 건설 역사를 소개하는 작은 철도 박물관이 있었다. 플롬스바나 노선은 해발 2미터의 플롬에서 해발고도 867m의 뮈르달을 잇는 철도로, 20km의 거리를 5.5%의 가파른 경사도로 오른다. 1924년에 착공해서 1940년에 완공되었는데, 당시 기술로는 큰 도전이었다.
박물관에서는 건설 과정과 완공 후 변화 모습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었다. 노선의 20개 터널 중 18개 터널을 수작업으로 뚫었는데, 당시 사용된 도구와 기계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과거부터 플롬스바나 노선을 운행했던 기차 모델과 실제 구형 기관차도 있었다.
박물관을 둘러본 후 기념품을 사고, 해변에 가서 모래 놀이를 했다. 아이들이 모래 놀이를 할 때 만큼 집중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모래 더미를 쌓고, 무너뜨리고, 물길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돌을 던지고, 창의력과 호기심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추워도 비가 와도 멈추지 않는다.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 다 되어서야 아이들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
이제 플롬을 떠나 오슬로로 향한다. 플롬스바나로 뮈르달까지 간 뒤 뮈르달에서 오슬로행 열차로 갈아탔다. 열차를 타고 협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본 풍경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깎아지른 절벽과 단풍이 든 숲,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 초원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들, 농가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우리가 전날 트레킹을 했던 Brekkefossen 폭포를 포함해서 수 많은 폭포를 보았다. 열차는 그중 Kjosfossen 폭포에 잠시 멈춰 쉬면서 사진 찍을 시간을 주었다. 노선의 마지막 구간은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방금 전에 박물관에서 철도의 건설 과정을 봤기 때문에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Myrdal역에 내려 역 카페에서 인생 최악의 커피를 마시고 오슬로행 기차에 올랐다. 베르겐에서 오슬로로 향하는 베르겐 선 Bergensbanen은 그야말로 서프라이즈였다. 피오르드를 여행하면서 '저 산 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는데, 베르겐선이 바로 그 산 위를 지나갔다. 정확히는 하르당에르비다 Hardangervidda 국립공원이다. 이곳은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가장 넓은 고원지대라고 한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마치 지구가 아닌 것 같았다. 눈 덮인 산과 고유한 호수, 고산 평원이 끝없이 이어지는 그야말로 대자연이었다. 해가 진 뒤라 풍경은 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드문드문 호숫가에 자리 잡은 오두막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이렇게 험한 자연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외딴곳에서 사는 삶은 어떨지 아이들과 상상해 보았다.
베르겐선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고산지대를 통과하는 철도로, 1909년에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기술력으로는 무척 험난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이런 도전을 했을까?
120년 전 그 도전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게 오슬로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 좌석을 4개 예매하면 6인실을 통째로 쓸 수 있었다. 아이들은 2층 침대 위에 올라가 뒹굴며 책을 읽고 게임을 했다. 식당칸에서 먹은 라자냐와 와플도 맛있었다. 열차는 5시간을 달려서 밤 10시 반에 오슬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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