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둘째 주말에 부르고뉴로 포도나무 단풍을 보러 가려했지만, 가족 모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취소했다. 그다음 주는 노르웨이에 다녀오느라 못 갔고, 어느새 10월 말이 되었다. 단풍철이 이미 끝났을 거라 포기하고 있었는데, 부르고뉴에서 찍은 최근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니 아직 단풍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급히 부르고뉴로 주말여행을 다녀왔다.
부르고뉴는 보르도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적인 와인 산지이다. 부르고뉴의 포도밭 구획을 뜻하는 클리마 Climats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특히 부르고뉴의 그랑크뤼 와인 루트 Route des Grands Crus는 그랑크뤼급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산지들을 따라 이어진 길로, 와인 애호가들이 성지 순례처럼 찾는 곳이다.
우리는 와인 애호가는 아니지만 풍경 애호가로 그랑크뤼 와인 루트를 찾았다. 파리에서 3시간을 달려 알록스 코르통 Aloxe-Corton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D974번 도로를 따라 뉘생조르주 Nuits-Saint-Georges, 부조 Vougeot, 쥬브레 샹베르탱 Gevrey-Chambertin 등을 둘러보고 디종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포도 나무에 단풍잎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10월 둘째 주가 절정이었던 것이다. 인스타그래머들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 안개가 끼어서 가까운 포도밭만 볼 수 있었는데, 이건 오히려 다행이었다. 날씨가 맑았다면 멀리 있는 포도밭들은 나무가 더 앙상해 보였을 것 같다.
절정이 지났어도 가을의 포도밭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계획 대로 수확하고 남은 포도알을 따서 맛보고, 부조 성을 둘러보고, 한 병에 천만원이 넘는 초고가 와인을 만드는 도멘 로마네 콩티 Domaine Romanée Conti의 포도밭에도 가보았다.
와인 루트의 끝인 디종에 도착해서 호텔에서 좀 쉬다가 디종 시내 구경을 하러 나갔다. 부르고뉴 공국은 한때 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거대한 나라였다. 1477년에는 벨기에와 네덜란드까지 영토를 확장했지만 백년전쟁 때 영국과 연합을 했다가 영국이 프랑스에 패배하면서 프랑스에 합병되었다.
부르고뉴 공국의 역사는 막을 내렸지만 공국의 수도였던 디종에는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부르고뉴 공작의 궁전 Palais des Ducs et des États de Bourgogne 과 궁전 앞의 광장이 아름다웠다. 거리에 안개가 끼어 있어서 더 고풍스럽게 느껴졌다.
디종은 '디종 머스타드' 로도 유명하다. 디종에서는 중세 시대부터 부르고뉴에서 재배한 겨자씨로 머스터드를 만들어왔는데, 18세기부터 이미 전 세계로 수출되는 프랑스 대표 특산물이었다고 한다. 디종 머스터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마이유 Maille의 샵에 찾아갔다.
Maille 샵에서는 다양한 맛의 머스터드를 시식하고 구매할 수 있었다. 마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 뿐만 아니라 샵에서만 판매하는 제품들도 있는데, 위스키향, 트러플향, 샤르도네 와인향, 꿀향 등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 하나씩 맛보고 충동구매 방지를 위해 구입은 다음 날로 미루었다.
아이들 프랑스어 선생님이 디종에 가면 부엉이를 꼭 찾아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부엉이를 찾아갔다. 디종의 부엉이는 노트르담 성당의 외벽에 새겨져 있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작은 조각으로, 만지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쓰다듬은 탓에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매끈해져 있었다. 우리도 한 번씩 만지고 행운을 빌었다.
부엉이 조각 앞에는 사각형의 청동 판에 부엉이 마크와 함께 번호가 적혀 있었다. 부엉이 마크를 따라가면 도보로 디종의 주요 명소를 탐방할 수 있도록 만든 부엉이의 길 Parcours de la Chouette 이라는 관광 루트라고 한다. 당장 출발하자는 아이들에게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부르고뉴에 왔으니 부르고뉴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에 가보고 싶었다. 구글 맵에서 부르고뉴 요리를 검색하니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들을 제외하고 평점이 가장 높은 곳은 Chez Leon이라는 레스토랑이었다. 예약 전화를 걸어 7시 반 예약을 요청했지만, 9시 예약이 다 차 있어서 7시만 가능하다고 했다. 9시 예약이 다 찰 정도라면 맛집이 틀림없다. 정각 7시에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부르고뉴의 대표 요리들을 주문을 했다. 전식으로는 달팽이 요리와 레드 와인 소스로 요리한 수란을 시켰고, 본식으로는 뵈프 부르기뇽과 소머리 요리,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후식으로 사과파이 타르트 타탱과 크레프를 골랐다. 그리고 물론 부르고뉴 와인도 주문했다.
식사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아내가 가장 기대했던 수란 요리는 입에서 사르륵 녹았고, 뵈프 부르기뇽은 우리가 그동안 먹어왔던 것은 가짜였다는 생각이 들만큼 원조의 품격이 느껴졌다. 소머리 요리는 소머리 국밥이랑 맛이 비슷해서 깍두기 생각이 간절했다.
첫쨰가 디저트로 주문한 크레프는 서버가 우리 테이블에서 그랑 마르니에(Grand Marnier)를 부어 불을 붙이는 플랑베 쇼를 선보였다. 불이 꺼진 뒤, 서버가 아이에게 먹을 수 있겠냐고 묻자 아이는 자신 있게 포크를 들었다. 알코올이 다 날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먹게 두었는데, 아이는 한 입 먹고는 바로 포기했다. 내가 먹어보니 술을 후한 인심을 담아 가득 넣은 탓에 알콜 향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서버는 우리가 접시를 바꾼 것을 보고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전식 : 좌 OEufs de Poule en Meurette 우 6 Escargots
본식 : 좌 Boeuf Bourguignon, 우 Tete de veau
디저트. 좌 Tarte Tatin, 우 Grand Marnier로 플랑베한 Crepe Suz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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