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 알프스, 부르고뉴

부르고뉴 - 디종 투어, Parc de l'Auxois 동물원

커피대장 2024. 11. 7. 03:50

이튿날, 아이와 약속한 대로 아침 일찍 부엉이 길을 다시 찾았다. 투어의 출발지는 아침에 가면 제일 좋은 곳인 전통 시장, 디종 중앙시장 Les Halles Centrale de Dijon으로 정했다  

 

디종 중앙 시장은 철골 구조로 지어졌는데, 프랑스의 어느 도시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건축물다. 시장에서는 채소, 육류, 해산물 등 식재료와 머스터드나 와인 같은 특산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시장 안팎으로 디종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가득 차서 활기가 넘쳤다.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바에는 달팽이 요리나 소시지와 함께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부엉이 화살표를 따라 구시가지를 계속 걸었다. 디종은 부티가 나는 도시였다. 돌로 포장된 길과 우아한 중세 건축물이 어우러진 거리에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모퉁이의 카페와 비스트로에는 프랑스 특유의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내 말로는 작은 도시에 이렇게 명품 부티크가 많은 곳은 처음 보았다고 한다. 

 

과거 부르고뉴 공국의 부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황금빛 언덕 Côte-d'Or 이라고 불릴 만큼 돈을 많이 벌어다 준 포도밭 덕분인지 모르겠다. 황금빛 언덕이라는 이름은 가을철 포도밭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빗대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곳의 와인이 황금처럼 귀한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둘 다 확인할 수 있었다. 

 

 

 

 

 

 

 

 

디종의 거리에서는 특산물 가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역시 와인 전문점들이다. 대부분 지하에 와인 저장고를 갖추고 있으며, 시음을 해볼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작은 가게들도 세심하게 꾸며 놓아서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아빠. 이 와인은 500유로나 해"

 

아이가 진열된 본 로마네 와인의 가격을 보고 놀라 말했다. 잘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커서 돈 많이 벌면 아빠에게 한 병 사주길 바란다. 

 

머스터드 가게  무타르드리 팔로 La Moutarderie Fallot에도 들렀다. 이 곳은 1840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업체로, 현재 디종에서 머스터드를 생산하는 유일한 업체라고 한다. 전날 방문했던 마이유 Maille와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의 맛을 시식해 보고 구매할 수 있었다. 팔로의 머스터드는 마이유보다 매운맛이 더 강한 편이었다. 

 

 

 
 

 

부엉이 마크를 다시 따라 가다 보니 전날 저녁에 방문했던 노트르담 성당에 다시 도착했다. 성당 외벽의 부엉이 조각 앞에는 부엉이를 쓰다듬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디종 노트르담 성당은 13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성당 정면에 가고일 조각 51개가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것이 특이했다. 이렇게 많은 가고일이 한쪽 면에 몰려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성당 내부는 높은 천장과 스테인드 글라스, 조각상이 있는 전형적인 고딕 성당의 모습이었다. 내부를 둘러본 뒤 촛불을 하나씩 켰다. 우리 아이들은 종교가 없지만 성당에 올 때마다 초를 사달라고 한다. 촛불을 밝히며 슨 소원을 빌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다음 목적지는 부르고뉴 공작의 궁전 안에 위치한 디종 보자르 미술관 Musée des Beaux-Arts de Dijon이다. 미술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은 우리를 미술관으로 안내한 부엉이에게 실망했다. 하지만 리옹에서 온 친구들이 여기서 합류해서, 함께 즐겁게 미술관으로 입장했다.   

 

디종 보자르 미술관에는 고대 이집트 작품부터 중세 미술, 르네상스 미술까지 다양한 시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부르고뉴 공국의 전성기었던 중세 시대의 종교 미술 작품들이 많았고, 부르고뉴 공작들의 화려한 석관이 인상 깊었다. 인상주의와 현대 미술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지만, 그때쯤 아이들의 집중력이 다 떨어져서 서둘러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미술관을 나온 아이들은 궁전 앞 라 리베라시옹 광장 Place de la Libération 에서 뛰어 놀았다. 궁전을 둘러싼 반원형 구조의 광장은 궁전을 더 돋보이게 했다. 과거에는 이 곳에서 공국의 주요 행사들이 치러졌을 것이다. 여름에 와서 카페 테라스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아이들이 분수대에서 노는 것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조금 특별한 곳을 찾아가서 먹었다. Le Chambouletous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직원들이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데, 소통에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메뉴 종이에 도장을 찍어서 주문을 했다. 

 

어른들은 로스트 비프를, 아이들은 닭고기 요리를 먹었는데 모두 맛있었다. 미식의 도시에 있는 레스토랑인 만큼, 좋은 콘셉트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고 지역 사회 통합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맛있는 요리까지 내놓는 좋은 식당이었다. 파리에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는 레스토랑들이 있는데 찾아가 봐야겠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위한 여행지인 포도밭에 군말 없이 따라온 것은 동물원에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부르고뉴에 있는 동물원을 검색해보니 Parc de l'Auxois라는 이름의 동물원이 괜찮아 보였다. 디종에서 파리 방향으로 40분 거리에 있어 집에 오는 길에 들리기 좋았다.

 

프랑스의 동물원은 자연 속에 위치한 곳이 많은데, Parc de l'Auxois도 그랬다. 찾아가기는 조금 불편하지만 동물들에게는 도심의 동물원보다는 좋은 환경일 것이다. 40헥타르의 넓은 숲과 평원에 500여 마리의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동물들을 관찰했다. 사자 우리에는 지난 겨울에 우크라이나의 동물원에서 온 사자 두 마리가 있었다. 전쟁 때문에 운영을 하기 어려워진 동물원에서 데리고 왔다고 한다. 사람도 피난 갈 곳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니 동물들의 상황이 어떨지 짐작이 되었다. 

 

 

 

 

 

동물원에는 작은 놀이공원도 있었다. 초등학생에게 딱 맞는 놀이기구들이 있어서 신나게 놀았다. 작동 원리를 이해한 후 여러 명이 힘을 합쳐 움직여야 움직이는 놀이기구도 있어서 아이들이 더욱 재미있어했다. 여름에는 수영장도 운영한다고 하니 어린이들에게는 여기가 부르고뉴의 그랑크뤼급 여행지다.  

 

동물원 곳곳은 할로윈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해적이나 마녀로 분장한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었다. 해가 지고 우리가 동물원을 나서려 할 때, 귀신으로 분장한 직원들이 핼러윈 특별 야간 개장을 위해 출근을 하고 있었다. 어른이 봐도 깜짝 놀랄 만큼 섬뜩한 분장이었다. 귀신들은 우리를 보고 '이제 진짜 재미있어질 텐데, 벌써 가려고?'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