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는 출장을 가서 혼자 저녁을 먹더라도 꼭 레스토랑에 가서 챙겨 먹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귀찮아지기 시작해 요즘은 패스트푸드로 해결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오늘도 호텔에 들어오니 나가기 싫어졌고, 마침 바로 근처에 있는 KFC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미식의 도시 리옹에 와서 KFC에 가는 건 아닌 것 같아 무거운 몸을 이끌고 구시가지로 나섰다. 리옹 구시가지 Le Vieux Lyon은 리옹 중심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된 곳이다. 과거에는 실크 직물을 생산하는 공방과 이탈리아 상인들의 거주지였으나, 지금은 카페와 상점, 그리고 전통 식당인 부숑 리오네 Bouchon Lyonnais가 자리잡고 있다.
부숑 리오네는 리옹의 전통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식당으로, 노동자들이 방문하던 소박한 식당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작고 아늑한 공간에서 식당 직원들이나 옆자리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정겨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외국인 혼자 방문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도 이제 프랑스 생활 5년차, 당당하게 한 자리 차지하고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리옹 구시가지 Vieux Lyon
부숑 리오네 Bouchon Lyonnais
과거 부숑은 노동자들이 주로 찾던 식당이었던 만큼 값이 저렴한 내장 요리를 많이 제공했다.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져 돼지 창자 소시지 앙두이예트, 돼지 비계 요리 그라통, 소머리 요리 등이 주요 메뉴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함께 리옹 인근에서 생산된 론 와인이나 보졸레 와인을 곁들인다.
전식으로는 리옹식 샐러드 Salade Lyonnaise를, 본식으로는 리옹식 소시지 Saucisson Lyonnais 를 주문했다. 샐러드 리오네는 신선한 잎채소 위에 베이컨과 달걀이 올려져 있었고, 소시송 리오네는 삶아진 후 렌틸콩, 당근과 함께 나왔다. 둘 다 정말 맛있었지만, 양이 많아서 후식은 주문하지 못했다. 아쉽다.
테이블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지나갈 틈이 거의 없었지만, 직원들은 그 사이를 능숙하게 오가며 음식을 내왔다.내 와인잔이 비어 있는 것을 본 옆 테이블 아저씨는 자신이 마시던 와인을 따라주셨다. 사양하는 것은 정을 나누는 부숑의 룰을 어기는 것이리라. 감사히 받아 마셨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소화도 시킬 겸 호텔까지 걸었다. 조명이 밝혀진 건물들이 손강에 반사되어 예뻤다. 시청 앞 테로 광장 Place des Terreaux 에서는 브라스 밴드가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KFC의 유혹을 이겨낸 덕분에 리옹을 조금 더 많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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