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상프로방스에서 2박을 했다. 밀린 빨래를 하고 한식도 해 먹으면서 중간점검을 하기 위해 에어비엔비를 빌렸다. 액상프로방스는 구시가지 전체가 차 없는 거리였다. 도심 밖에 주차를 하고 숙소까지 짐을 나르는데 고생을 좀 했지만, 이때를 제외하고는 우리도 보행자 천국을 누렸다.
차가 없어진 대신 거리를 사람이 가득 메웠다. 공간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테이블이 있고 테이블을 채운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느라 즐겁다. 파리보다 조금 더 느슨하고 한 템포 느린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골목길을 쏘다니며 분위기를 만끽했다.



액상프로방스는 분수의 도시였다. 가이드북에 나오는 유명한 분수들 외에도 골목마다 크고 작은 분수가 있었다. 로통드 분수, 르네왕 분수, 9개의 대포가 있는 분수, 돌고래가 있는 분수, 시청 앞 분수 등 주요 분수들을 찾아 다녔다.
사람들은 분수 주변에 앉아서 더위를 식히고, 강아지와 비둘기들도 분수물에 목을 축인다. 우리집 어린이들도 분수대를 발견할 때마다 뛰어가서 물장난을 쳤다. 액상프로방스의 별명이 물의 도시라고 하는데 그럴 만했다.




7월에는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이 열린다. 도심 곳곳의 야외무대에서 매일 밤 공연이 열린다. 메인 무대의 오페라 공연이 보고싶었지만 낮에 여행을 하고 저녁에 세시간이 넘게 걸리는 오페라를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대신 숙소 근처의 음악학교 안뜰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기로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아 아내와 번갈아 가며 하루 씩 갔다. 나는 Julia Bullock이라는 미국 소프라노의 독창회에 다녀왔다. 슈베르트나 베르디 같은 클래식부터 재즈까지 폭 넓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줄리아는 중간중간 노래 가사의 의미, 본인이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 작곡가에 대한 애정을 관객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정식 공연장의 공연보다 소통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악보가 날아가기도 하고 피아노 안에 나뭇잎이 떨어지기도 했다. 무대 옆에 큰 나무가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면서 소리를 내고 새들도 노래를 부르며 협연을 했다. 야외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이다.


숙소 근처에서 매일 아침 시장이 열렸다. 시장에서 과일, 치즈, 빵을 사다 먹었다.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꽃시장도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꽃이 많았다. 오래 머물렀다면 꽃을 사서 숙소에 꽃아 놓았을 텐데. 일정이 짧아서 아쉬웠다.
구시가지에는 프로방스의 특산품인 마르세유 비누, 라벤더 제품, 누가를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 마르세유의 비누는 루이14세가 비누제조 독점권을 주고 엄격하게 관리하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파리에서도 쉽게 살 수 있으니 구경만 했다. 한국에 갈 때 가족 선물용으로 누가를 몇 개 샀다.



둘째 날은 마자랭 지구에 위치한 그라네 미술관 musée Granet에 갔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세잔을 비롯해 프로방스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부터 선사시대의 유적까지 다양한 작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로마 사진전도 하고 있었는데 100년도 더 전에 찍은 사진들이었다. 얼마 전에 로마에 다녀와서 사진 속 거리의 지금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콜로세움과 스페인 계단은 100년 전 모습이 지금과 너무 똑같아서 놀랐다.
마자랭 지구에는 Book in bar라는 이름의 영어책 서점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책을 좋아해서 여행을 다니다 서점이 보이면 들어가본다. 영어책을 파는 서점이라면 더더욱! 책 구경을 하고 서점 카페에서 주스도 마셨다. 2층에 글로벌 서가에는 한국어 책들도 있었다. 대부분 학습용 교재였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프랑스에는 어디를 가나 동네 서점이 아직 많다. 프랑스에서도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작은 동네 서점들도 굳건히 버티고 있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기 때문이고, 또 동네 가게를 아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파리시는 코로나 봉쇄 기간 동안에도 영업을 할 수 있는 ‘필수 업종’에 서점을 포함시켰다. 서점이 문을 닫은 동안 아마존이 상권을 잠식할 것을 우려해서다. 봉쇄 첫 날 서점을 비롯해 와인 가게, 옷 수선집, 등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연 것을 보고 ‘이게 다 필수 업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봉쇄 기간 동안 지역 상권이 망가지고 그 틈에 대형 전자상거래 기업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되었다. 파리 시장 앤 이달고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N'achetez pas sur Amazon, achetez chez votre libraire, Amazon, c'est la mort de nos librairies et de notre vie de quartier.” 아마존에서 사지 마세요. 동네 서점에서 사세요. 아마존은 우리의 서점과 우라 동네 삶의 죽음이에요.
그녀 말 대로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씩 샀다.





엑상프로방스의 북쪽 언덕에는 세잔이 말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용한 아뜰리에가 있다. 건물 2층 작업실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있어서 햇살이 한가득 들어왔다. 세잔이 사용하던 화구와 그가 정물화를 그릴 때 모델로 삼았던 화병, 가구 등이 보존되어 있어서 100년 전 화가가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아뜰리에 앞에는 세잔이 직접 가꾼 정원이 있다. 세잔의 일생을 그린 만화나 아이들이 틀린 그림 찾기, 미로 찾기 같은 게임을 할 수 있는 그림판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정성을 들인 장소에 오래 살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면서 그를 떠올리는 공간이 되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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