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프로방스, 코트다쥐르

6. 무스티에 생뜨마리, 생크로와 호수

커피대장 2022. 11. 16. 16:07

혼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산책을 나갔다. 전날 저녁 올라가다가 포기한 바위산 위의 Chapelle Notre-Dame-de-Beauvoir 교회에 갔다. 경사가 가팔랐지만 마을에서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올라가는 길에 돌아보니 생크루아 호수가 보였다. 에메랄드 빛 물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Notre-Dame-de-Beauvoir 교회는 12세기에 처음 지어졌고, 16세기에 증축이 되었다고 한다. 교회의 입구 쪽 창문으로만 해가 들어오는데 조명도 전혀 없어서 실내가 매우 어두웠다. 그 옛날 왜 이렇게 높은 산 위까지 돌을 날라서 교회를 지었을까? 당시 사람들에게 신의 의미는 지금과 완전히 달랐을 것이고, 나는 종교인도 아니니 그 이유를 짐작도 하기 힘들다.

금요일은 무스티에 생트마리 Moustiers-Sainte-Marie 마을에 장이 서는 날이었다. 교회에서 내려오니 상인들이 매대 앞에 서서 장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상인들과, 마을 사람들과 일주일간 밀린 이야기를 하느라 바빠 정작 상품 진열을 뒷전이다. 설화 형태의 이야기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 시장이었을 것이라고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그 현장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을 먹고 마을 빵집에서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사서 생크루아 호수 Lac de Sainte croix 에 놀러 갔다. 호숫가에 주차 경쟁이 치열하다고 해서 일찍 갔는데 차가 많지 않아 나무 그늘 아래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어린이 4인은 물놀이를 할 생각에 잔뜩 들떴다.

호수에서 카약을 빌려서 프랑스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리는 베르동 협곡 Gorges du Verdon을 따라 올라가봤다. 베르동 협곡은 보기는 정말 멋지지만 놀기는 별로 좋지 않았다. 해는 이글이글 타오르는데 그늘진 곳이 전혀 없었다. 올해 여름은 가물어서 물이 별로 없고 깨끗하지도 않아 강에 들어가 놀기도 힘들었다.

 

 



다시 호수로 돌아와서 점심으로 싸온 샌드위치를 먹고 호수에서 물놀이를 했다. 생크루와 호수의 물은 베르동 협곡과는 달리 정말 깨끗했다. 처음에는 호수가에서 놀았는데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도 수심이 깊어져서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계속 잔소리를 해야 했다. 30분쯤 놀다가 이럴 바에는 차라리 구명조끼를 입혀서 깊은 물에서 노는 것이 더 안전할 것 같아서 페달보트를 빌렸다.

아이들을 페달보트에 태워서 호수 한가운데까지 갔다. 그리고 보트에서 내려서 놀라고 이야기했다. 무섭다고 안 들어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 명씩 물에 들어갔다. 주저하던 막내 지수도 형들을 따라 입수에 성공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보트 주변에서 놀다가 점점 반경을 넓히더니 엄마가 있는 호수변까지 헤엄쳐서 가는데 성공했다. 그 후로는 자신감이 붙어서 호수가와 배를 몇 번씩 왕복하고, 배에서 다이빙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멋진 협곡을 배경으로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예쁜 색깔의 물에서 둥둥 떠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프랑스에 잠시나마 살게 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흐동 협곡은 차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가면 아래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저녁에 가보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호텔 수영장에 가서 더 놀고 싶다고 해서 가지 않았다. 그래 너희들 원하는 만큼 실컷 놀아봐라.







수영장에서 한참을 더 놀고 이른 저녁으로 피자를 먹었다. 피곤해서 식당까지 못 가겠다는 어린이 고객님들을 위해 테이크아웃을 해와서 호텔 테라스에서 먹었다. 어른들은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로제 와인을 마셨다. 여름에는 차가운 로제 와인이 최고다.

저녁을 먹고 다 같이 Notre-Dame-de-Beauvoir 교회에 다시 올라갔다. 아이들이 교회 흙마당에 정상 정복 기념으로 나뭇가지로 태극기를 그려 놓았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는 저녁 바람이 불어서 시원했다. 해가 산 뒤로 넘어가면서 노을이 지고 마을이 붉게 물들었다. 먼저 내려간 아이들이 돌길을 걸으며 재잘재잘 떠들고 뒤에서는 새소리가 들렸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기억하고 싶어서 동영상을 찍어 두었다.





 

 

 

다음 날 체크아웃을 하기 전에 호텔 수영장에서 마지막 수영을 했다. 오전이라 물이 차가운데도 아이들은 '그렇게 춥지 않은데?', '생각보다는 따듯한데?'라며 자기암시를 하며 들어갔다. 그리고 한 시간도 못 버티고 덜덜 떨면서 나왔다.

파리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멀어서 리옹에 있는 동료 집에서 하루 밤 신세를 졌다. 리옹으로 올라오는 길에 론강 주변에 멋진 포도밭들이 많았다. 가을이 되면 포도밭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황금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올 가을에 다시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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