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로렌, 보주

둘째 날. 오쾨니스부르 성, 독일 국경 넘기

커피대장 2022. 11. 6. 06:53

나 혼자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다른 식구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숙소를 나와 옆 마을 로덴 Rodern까지 산책을 했다. 포도밭 샛길로 걸어가다가 포도를 한 알 따먹어봤다. 아직 안 익어서 단 맛은 전혀 없지만 상큼한 맛은 있었다.

 

언덕 위에 오르니 포도밭 가운데 자리잡은 마을이 보였다. 이렇게 예쁜 마을이 가이드북의 '주요 마을'에는 이름을 못 올렸다. 이 동네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 마을 위에는 아침 안개가 내려앉았고, 멀리 오늘 방문할 오쾨니스부르 성 Chateau de Haut-Koenigsbourg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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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할 때 보니 새벽에는 잘 보였던 성이 구름 속으로 숨어 버렸다. 성에 오르면 산 아래 그림 같은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실망이 컸다. 하지만 아이들은 구름 안으로 들어간다고 신났다. 차창을 열고 구름을 만지면서 깔깔댄다.

 

"아빠! 내가 구름을 먹고 있어! 신기하게 아무 맛도 안나!!"

 

성이 구름 위에 있으면 구름 바다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다. 하지만 성은 정확히 구름 한가운데 있었다. 앞도 잘 보이지 않아서 입구를 찾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구름 속을 걷는다며 여전히 신이 났다.

 

오쾨니스부르 성은 900년 역사를 자랑한다. 알자스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낀 탓에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렸고, 성도 전쟁통에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반복했다. 지금의 모습은 1908년 독일의 빌헬름2세가 완성한 것이다. 성 내부 전시실에 역사와 재건 과정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성 곳곳에 중세 복장을 한 직원들이 자리잡고 중세 시대의 무기, 음식, 축성술, 화장실 문화 등을 설명해주었다. 흥미로운 이야기 같았으나 프랑스어를 잘 못해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는 내 마음대로 이야기를 지어내 엉터리 통역을 해주었다.

​​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원숭이 동물원 Montagne des Singes에 들렸다. 동물원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무 위나 바위 위에 혹은 길가에 앉아 있는 원숭이들을 만날 수 있다. 마침 식사 시간이라 원숭이들이 과일을 먹는다고 바빴다.

입구에 최근에 아기 원숭이가 태어나서 운이 좋다면 만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 부러진 나뭇가지에 어설프게 뛰어오르다 떨어지는 아기원숭이를 발견했다.

 

길에서 직원들을 만나면 원숭이들의 생태를 설명해준다. 직원들이 모두 전문적이고 친절했고, 이번에는 영어로 설명을 해줬다. 이벤트에 참여해서 아기 원숭이 엽서도 받았다. 내가 원숭이가 아니니 이런 말을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여기는 원숭이도 관광객도 행복한 동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내려와 점심으로 알자스 전통 음식인 타르트 플랑베 Tarte flambée를 먹었다. 아주 얇은 도우 위에 치즈와 토핑을 올려서 화덕에 구운 요리다. 이렇게 설명하면 피자와 비슷하지만 알자스에서 타르트 플랑베를 피자라고 부르면 큰일 난다고 알자스 사람이 귀 뜸해 주었다. 한국에서 된장국을 미소 수프라고 부르면 안되는 것과 비슷할까.

 

피자 아니 타르트 플랑베 위에 올릴 토핑은 각자 취향에 맞게 선택한다. 우리는 크림 베이컨 토핑, 햄 토핑, 버섯 토핑을 주문했다. 완벽하게 (알자스 사람 말에 의하면 도우가 살짝만 타서 바삭하지만 촉촉한 느낌은 남아있는 정도로) 구워 진 타르트 플람베나 나왔다.

별로 들어간 재료도 없는데 정말 맛있었다. 아니 들어간 것이 없어서 맛있는지도 모른다. 바삭 부서지는 도우 위에서 버섯 향이 가득 느껴졌다. 동네에서 생산된 리슬링 와인을 한 잔 주문해서 같이 마셨다. 심심한 음식과 단 와인이 잘 어울렸다.

 

숙소에 오는 길에 아이들이 차에서 잠이 들었다. 조금 더 재우려고 30분 거리에 있는 독일로 드라이브를 했다. 유럽에서는 자동차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독일에 도착해서 잠이 깼다.

 

"너희들 자는 동안에 우리 독일에 왔 어."

"정말? 여기가 독일이야?"

"신기하지? 아빠도 육로로 국경을 넘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야."

 

아이들은 라인강에 돌을 던지고 근처 숲에서 곤충을 잡고 놀았다. 순식간에 나비, 잠자리, 메뚜기로 채집통을 채웠다.  파리에는 곤충이 별로 없어서 아쉬웠는데 여기서 소원풀이를 했다.

 

“아빠 독일은 좋은 나라야. 곤충이 정말 많아!

 

이렇게 독일은 프랑스보다 좋은 나라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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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와 야식으로 독일에서 산 소시지와 리퀴비르에서 산 알자스 치즈를 먹었다. 바깥 공기가 너무 좋아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옆에서 오늘 여행을 그림으로 남겼다.

 

여름의 프랑스는 낮이 길다. 열 시가 넘자 포도밭 너머로 해가 지면서 노을이 생겼다. 먼 훗날 언젠가 아이들이 이 순간을 문득 떠올린다면 잠시라도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아이들이 나중에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