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로렌, 보주

셋째 날. 케제르베르

커피대장 2022. 11. 6. 18:01

아침 일찍 일어나 빵을 사러 옆마을에 갔다. 빵집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느라 바쁘다. 주변의 더 작은 마을에는 빵집이 없어서 다들 여기로 빵을 사러 오는 것 같다. 바게트를 사서 숙소로 오는 길에 한 입 뜯어먹었다. 갓 구운 바게트를 한 입 베어먹지 않고 집까지 들고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프랑스 빵은 너무 맛있다. 레스토랑에 가면 기본으로 주는 빵, 호텔 조식 빵, 회사 식당에서 점심시간에 주는 빵, 회의 때 쉬는 시간에 주는 빵, 카페에서 아침 세트 메뉴로 나오는 빵 다 맛있다. 심지어 슈퍼에서 파는 식빵도 맛있다.

어디를 가나 빵이 맛있는 건, 그만큼 프랑스 사람들에게 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중요했으면 1986년까지 정부가 빵 값을 통제했고, 바게트 제조 방법에 대한 법령 baguette de tradition française이 있어서 허용된 재료만 넣어야 전통 바게트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다가 목이 잘린 것으로 유명한 분도 있다. (사실 마리 앙투아네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최근에는 집 근처 빵집이 문을 닫아서 삶의 질이 현격하게 저하되어 이사를 간다는 사람을 만났다.

동네 빵집마다 아침 저녁으로 항상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퇴근 길 바게트를 안고 끼고 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도 이제 그 중 하나다. 프랑스에 온 뒤로 우리 가족은 아침으로 빵을 먹는다. 여행을 와서도 빵집을 찾아 바게트를 사간다.



아침으로  빵을 먹고 오전 내내 숙소에서 놀다가 체크아웃을 하고 케제르베르 Kaysersberg에 갔다. 오전 내내 날씨가 괜찮았는데 마을에 도착하니 야속하게도 비가 쏟아졌다. 비를 피해 근처에 지붕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크리스탈 공방이었다. 관광객들이 장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문을 열어놓았다. 덕분에 유리 막대기가 꽃과 새로 변신하는 것을 눈 앞에서 볼 수 있었다.

공예가들이 뜨거운 가마 앞에서 벌개진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한 결과물을 아이들 앞에 내놓았다. 작업하는 과정을 구경하던 넋을 잃고 아이들은 물개박수로 화답했다. 아이들에게 방금 저 분들이 마법을 부린 거라고 이야기해도 믿었을 것 같다.


 



비가 금방 그칠 분위기가 아니라 근처 카페에 가서 와플을 먹었다. 빗방울이 바람에 날려 들이치고 그늘 막 사이로 빗물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프랑스 사람들은 언제나 테라스에 앉는다. 우리도 프랑스식으로 테라스에 앉았다.

지수가 크림이 잔뜩 올려진 와플을 먹으려고 입을 있는 힘껏 벌렸다. 옆자리 아저씨도, 아저씨 발 옆에 앉아있던 강아지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와플을 다 먹었을 때쯤 나자 비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구름 속으로 해가 나왔다.

마을을 구경하고 알자스 특산품인 마카롱과 진저브레드를 사 먹었다. 마을 교회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거대한 조각상이 있었다. 조각이 너무 리얼해서 지수는 무섭다고 도망치듯 교회를 빠져나왔다.

 


마을 뒤 언덕에 있는 케제르베르 성에 올라갔다. 아이들은 성 앞 포도밭 물웅덩이에 돌을 던지면서 놀았다. 아내와 나는 초록색 포도밭과 그 사이사이 자리잡은 마을들, 그리고 멀리 블랙 포레스트까지 이어지는 풍경을 감상했다. 성 앞에 독일 방향으로 슈바이처 박사의 글이 적혀 있었다.

“수평선 너머는 독일입니다. 이 광활한 풍경에 당신 눈에는 국경이 보이시나요? In the horizon, Germany. In this vast landscape, do you see the border?

케제르베르에서 태어난 그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 이 곳은 독일이었다. 그는 전쟁 중 프랑스에 포로가 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알자스를 차지했고, 포로들에게 국적을 선택할 권리를 주었다. 슈바이처 박사는 프랑스인이 되었다. 그의 삶에 대해 읽고 나니 글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아이들에게도 국경은 사람들이 만든 보이지 않는 장벽이라고 알려주었다.

포도밭 산책을 하면서 마을로 내려왔다. 주차장에 마침 다양한 국적의 번호판을 단 차들이 있어서 아이들과 몇 개 나라 차량이 있는지 찾아봤다.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폴란드, 정말 많이 찾았다.

"아빠. 한국 차에는 K라고 적혀 있어?"
"아니 한국 차에는 국가 표시가 없어."
"그럼 어느 나라에서 온 차인지 어떻게 알아?"
"한국 차는 외국으로 갈 수 없고, 외국 차도 한국으로 올 수 없어. 북한을 지나갈 수가 없거든."
아이의 질문 덕분에 분단된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해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