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 휴가의 반은 와인 루트의 마을들을 돌아보면서, 나머지 반은 보주 자연공원 Parc naturel régional des Ballons des Vosges에서 보냈다. 산을 오르는 길을 운전하면서 강원도 평창의 외갓집에 가는 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겹겹이 펼쳐진 초록색 산, 작은 마을들, 언덕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의 모습이 익숙했다.
산 중턱의 작은 마을에 자리잡은 별장을 숙소로 잡았다. 별장에는 6개 방이 있었는데, 공용 수영장과 놀이터가 있어서 아이들과 지내기에 좋았다. 하루 종일 숙소에서 수영을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놀다가 지루해지면 가까운 관광지를 찾아 다녔다.
Munster 멍스테르
알자스에서 보주 산맥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작은 마을로, 마을 이름과 같은 Munster 치즈가 유명하다. 마을에 있는 치즈 박물관에 가봤다. 치즈의 역사, 종류, 제조 방법이 잘 전시되어 있고, 아이들이 만져볼 수 있는 전시물도 많았다. 작은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농장의 4계절을 담은 영상도 재미있었다.
Munster에 갔으니 Munster 치즈를 사 먹어봤다. 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좀 긴장했다. 소젖으로 만든 치즈 중에서는 맛과 향이 가장 강하다, 온 마을에 치즈 냄새가 난다, 그건 향이 너무 세서 프랑스 사람도 잘 안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니 그렇게 난이도가 높은 치즈는 아니었다. 식 감이 부드럽고 촉촉했고 무엇보다 색깔이 예뻤다.
제라르메르 Gérardmer 호수
제라르메르 호수는 보주 산 중턱에 있는 빙하호다. 호수에 들어가보니 발이 아플 정도로 물이 차가웠다. 한여름의 물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지수는 물고기를 잡겠다고 호숫물에 발을 담갔다가 발이 얼었다고 울어버렸다. 빙하호가 뭔 지 몸소 체험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차가운 물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유럽 사람들은 우리와 피부 구조가 다른 가보다. 우리는 물에 들어가는 대신 물 위에서 놀기로 했다. 작은 모터 보트를 빌려서 뱃놀이를 했다.
호수 위에서 아무 생각없이 산 풍경을 감상하다 배가 바람에 밀려 부표에 걸러 벼렸다. 배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프로펠러가 줄에 감겨 빠져나오지 않았다. 결국 대여업체에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업체 직원이 물 속에 들어가 줄을 끊은 뒤 호숫가까지 견인을 해주었다.
아이들은 이런 사고들을 잘 기억한다. 지금도 보주 산맥 여행 이야기를 하면 "우리 배 운전 잘못해서 견인 당했 자나" 하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트레킹
보주 자연공원은 프랑스에서 가장 큰 자연공원이라고 한다. 그만큼 트레킹 코스가 많다. 산 정상까지 오르는 본격 등산도 있고, 우리 같은 유아 동반 가족이 다녀올만한 코스도 있다. 숙소에 우리 마을 트레킹 코스 지도가 있어서 가장 쉬운 '폭포까지 다녀오기 30분' 코스에 도전했다.
가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서 수풀을 헤치고 물웅덩이를 넘어가며 힘들게 폭포에 도착했다. 아빠가 길을 잘못 든 것 역시 아이들이 절대 잊지 않고 기회만 되면 이야기하는 레퍼토리다.
고생은 했지만 아이들도 '우와 멋지다!'고 이야기할 만큼 아름다운 숲이었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잘 따라왔다. 앞으로 반나절 트레킹 코스 정도는 다녀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반바지를 입고 가서 모기에 잔뜩 쏘이고 풀에도 많이 긁혔다. 트레킹을 할 때는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르 오네끄 Le Hohneck
여행 마지막 날. 보주 산맥의 산봉우리 중에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찾아갔다. 소나무 숲길, 호수, 양과 소가 풀을 뜯는 언덕을 지나는 아름다운 길을 30분 정도 달려 르 오네끄 정상에 도착했다. 동서남북으로 보이는 것이 산 밖에 없었다. 보주 산맥이 얼마나 큰지 실감이 났다.
프랑스 사람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피크닉을 하고 있었다. 다들 요리를 준비하고 접시에 와인잔까지 챙겨와서 즐겁게 먹고 마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뭐 좀 챙겨 올 걸. 아쉬운 대로 돗자리를 깔고 앉아 과자를 먹었다.
산에서의 3박 4일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아이들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 조금 놀았다고, 한 달만 더 있다 가자고 울었다. 아이들은 돌아다니는 여행보다는 산이나 바다에 한 군데 자리를 잡고 놀고 싶어 한다. 프랑스에 10년 20년 산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니 아빠 엄마는 여기저기 가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일정의 반은 와인 루트를 따라 마을을 돌아다니고 나머지 반은 산장에서 쉬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이렇게 서로 이야기하며 어른도 아이도 모두 행복한 휴가 방법을 찾아가는 것도 여행을 통해 배우는 좋은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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