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리츠에서 사흘을 보내고 조금 더 한적한 곳을 찾아 생장드뤼즈에 갔다. 비아리츠보다 좀 더 바스크 색채가 강하고 예쁜 마을이었다. 항구, 시장, 해변, 교회가 골목길로 이어져 있고, 길을 따라 붉은 지붕과 붉은 덧창의 바스크 식 집들이 늘어 서있다.
마을 중심에 있는 Saint-Jean-Baptiste 교회는 루이14세와 스페인 공주 마리 테레즈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다. 교회 양쪽 벽면에도 층층이 신도들이 앉을 수 있는 갤러리가 있는 것이 특이했다. 교회 천장은 나무로 지어졌고, 가운데 배가 한 대 매달려 있다. 항구 도시의 교회답다.
생장드뤼즈의 해변은 파도가 작아 아이들이 놀기 좋았다. 모래성을 만들고, 나뭇가지로 모래에 그림을 그리고, 해변으로 떠밀려온 해초를 건지고, 파도와 잡기 놀이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숲이나 강, 바다에 가면 아이들은 스스로 잘 논다. 심심하다고 아빠를 찾거나 떼를 쓰는 일이 없다. 잘 놀았으니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생장드뤼즈에서 그동안 프랑스에서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먹었다. 빠에야, 문어 요리, 생선 요리 다 훌륭했다. Sardine 구이가 특히 맛있었다. 파리에서는 이렇게 신선한 해산물을 찾기가 힘들고 훨씬 비싸다.
생장드뤼즈는 마카롱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마카롱은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일반적인 마카롱과는 달리 납작하고 투박한 모양에 아몬드 맛 하나밖에 없었다. 아몬드 향이 강하고 고소했다. 바스크 출신 동료 말로는 ‘너희가 파리에서 먹는 라두레 따위와는 다른’ 맛이다.
바스크에 왔으니 바스크 케익 Gateau basque도 빠질 수 없다. 바삭하게 구운 타르트 안에 아몬드 크림과 체리가 들어간다. Maison Adam이라는 가게에서 케익을 샀는데 포장에 1660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찾아보니 정말 1660년부터 시작해 루이14세 결혼식에도 납품을 했던 가게였다.
프랑스에서는 가게 앞에 '1970년부터' 라고 적어 놓은 집을 찾기 힘들다. 최소한 1950년 이전에는 시작해야 간판에 걸 수 있는 분위기다. 50년 역사로는 명함도 못 내미는 거다. 누군가 "30년 전통의 역사" 라고 간판에 적으면 옆 가게 주인이 와서 "엄마 젖 더 먹고 와"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우연히 1910년에 찍은 우리 동네 사진을 찾았다. 100년 전 사진인 데도 어디에서 찍혔는지 알 수 있을 만큼 거리의 모습이 지금과 똑같았다. 나무가 더 자라고 마차 대신 자동차가 있는 것 빼고는 달라지게 없다. 심지어 정육점 앞 카페는 1910년에도 카페였다.
우리나라는 1910년대까지 갈 것도 없이 30년 전 사진만 봐도 지금과 너무 다른데. ‘세상이 변한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프랑스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과 우리 나라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프랑스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다 가도, 또 이렇게 큰 차이가 느껴 지기도 한다. 똑같은 점을 발견하는 것도,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해외 생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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