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구시가지 람블라스 거리에 갔다. 보행자 거리 좌우로 키가 큰 가로수들이 늘어서있었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을 지나 FC 바르셀로나 샵에 갔다. 요즘 축구에 푹 빠져서 사는 윤수에게 축구 유니폼을 사주기로 했다. 22-23 시즌 유니폼 가격이 100유로를 훌쩍 넘는데, 거기에 등에 이름과 번호를 프린트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더 지불했다. 팬들 덕분에 먹고살면서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YOONSOO 7이 찍힌 유니폼을 받아 든 아이는 마냥 행복했다.
람블라스 거리에서 빠져나와 고딕 지구를 걸었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오래 된 지역으로 곳곳에서 중세 시대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왕의 광장, 산 펠립네리 광장, 레이알 광장 등 골목골목 숨겨진 유적지들을 찾아다녔다.
고딕 지구의 랜드마크는 카탈루냐 양식과 고딕 양식을 혼합해 지어졌다는 바르셀로나 대성당이다. 외관 복구 공사를 위해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가림막에 삼성전자의 거대 광고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삼성전자가 복구 비용을 지원하고 광고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광고판의 대형 휴대전화 사진이 성당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기 흉했다. 가림막 안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프린팅 하고 삼성의 로고만 한편에 그려 놓는 것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고딕 지구의 피 광장 Plaça del Pi에는 작은 시장이 열렸다. 꿀, 잼, 치즈, 햄, 와인 등 먹을거리를 파는 마켓과 예술가들이 그림을 파는 아트 마켓이 있었다. 아이들이 전시되어 있는 그림을 둘러보고는 스케치북을 꺼내들고 광장 한편 벤치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광장의 예술가들이 아이들에게 와서 한 마디씩 응원을 해주고 갔다.
"대단한 집중력이네요!"
"추상화군요. 상상력이 풍부한걸요!"
그림을 다 그리고 근처 카페에서 추러스를 먹었다. 구글 맵에서 고딕 지구 최고의 추러스라는 리뷰가 잔뜩 잘린 카페를 찾아갔는데 과연 훌륭했다. 갓 튀겨서 나온 따끈따끈한 추러스에 설탕을 잔뜩 뿌리고 진한 핫초코를 찍어서 먹었다. 스페인에서 먹는 추로스는 다른 나라에서 파는 추로스와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오후에는 구엘 공원에 갔다. 공원 입구에 놀이터가 있어서 아이들이 못보게 돌아서 입장했으나, 어린이들은 매의 눈으로 그네를 포착했다. 공원을 다 돌고 나면 놀이터에서 놀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서둘러 내추럴 스퀘어에 올라갔다.
아름다운 타일 모자이크 벤치에 앉아 바르셀로나 시내와 지중해를 잠시 바라본 뒤 공원의 마스코트 도마뱀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정원을 걷다가 진짜 도마뱀을 만났다! 아이들에게는 바르셀로나 여행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공원에서 내려와 기념품 가게 구경을 하고 약속대로 놀이터에 가서 원 없이 놀렸다.
공원에서 나와 근처 타파스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해가 뜨거워서 호텔 옥상 수영장에 가봤는데, 아직 물은 수영을 하기에는 많이 차가웠다. 용감하게 물에 뛰어든 형제는 잠깐 신나게 놀고는 벌벌 떨면서 방으로 돌아와 욕조 물놀이로 아쉬움을 달랬다.
저녁에는 다시 람블라스 거리에 가서 레고샵에 들러 레고로 만든 바르셀로나의 건축물을 구경했다. 카사 밀라, 구엘 공원, 성가족 대성당을 예쁘게 만들어놓았다. 성가족 대성당은 성당의 공사 진도에 맞춰서 레고 건물도 조금씩 완성해 가는 것 같았다.
람블라스 거리에서 길거리 댄서들의 공연을 보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카탈루냐 음악당에 공연을 예약해놓아서 음악당 근처의 타파스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음식이 너무 늦게 나왔다. 옆 테이블 손님도, 옆의 옆 테이블 손님도 같은 공연을 보러 왔는지 초조하게 기다렸다. 가리비, 새우, 이베리코 요리를 먹었는데 오래 기다릴 만큼 맛있기는 했다. 지수가 더 먹고 싶어 했으나 시간이 없어 다음에 먹기로 하고 서둘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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