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도뉴

다섯째날. 라스코 동굴벽화, Saint-Léon-sur-Vézère, Montignac 야시장

커피대장 2022. 11. 12. 00:07

만오천년 전 크로마뇽인 예술가들이 베제흐 Vézère 계곡의 동굴에 벽화를 그려 놓았다. 벽화는 산사태로 동굴의 입구가 무너지면서 밀봉된 상태로 보존이 되었다. 그리고 1940, 잃어버린 개를 찾던 네 명의 소년이 나무가 쓰러져서 생긴 좁은 틈으로 동굴에 들어가 벽화를 발견한다.

벽화에 그려진 동물들은 구석기인들이 그렸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생생했고 채색도 다채로웠다. 라스코 동굴벽화의 발견은 크로마뇽인이 당시 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금의 인류와 가까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벽화는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큰 관심을 끌었다. 공개되자마자 하루 천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방문을 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동굴 벽에 곰팡이와 얼룩이 생기기 시작한다.

결국 라스코 동굴은 1963년 보존을 위해서 폐쇄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연구와 보존을 목적으로 소수의 학자들만 방문이 가능하다. 일반인들은 위해서는 대신 라스코 동굴 바로 옆에 진짜 동굴과 벽화를 재현한 인공 동굴을 만들어 놓았다. 1983년 벽화의 90%를 재현한 라스코2가 만들어졌고, 2016년 레이저, 3D 프린팅 등 최신기술을 총동원하여 벽화를 완전히 재현한 라스코4가 공개되었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원본도 아니고 복제된 벽화를 보러 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고민을 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구석기인이 남겨놓은 흔적 그 자체다. 모나리자를 완전히 복제한 그림이 다른 곳에 걸려 있더라도 사람들은 진짜 모나리자를 보려고 루브르에 줄을 설 것이다. 그래도 30분 거리에 고고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을 지나치기는 아쉬워 다녀왔다.

라스코4는 가이두 투어만 가능하다. 우리는 하루에 네 번 있는 영어 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와 함께 건물 옥상에서 실제 동굴의 위치를 확인한 뒤 영상실에서 라스코의 지금 모습과 과거 모습을 비교하는 영상을 봤다. 그리고 인공 동굴 입구에서 동굴을 처음 발견했을 때 소년들의 대화를 재현한 녹음을 들으며 동굴에 입장했다.


정말 동굴에 들어온 것 같았다. 동굴의 모양 뿐만 아니라 온도, 습도, 조명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놓았다. 가이드와 함께 동굴을 통과하며 벽화를 감상했다. 가이드는 벽화 뿐만 아니라 동굴의 자연 환경, 크로마뇽인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다. 진지하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완벽한 해설이었다. 지금까지 만나본 가장 훌륭한 가이드다.

동굴을 나오면 주요 그림들을 랜더링해놓은 스튜디오에 들어간다. 스튜디오에서는 밝은 조명 아래에서 그림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그림이 그려진 순서, 그림을 그리는데 쓰인 재료, 기법들도 자세히 소개된다. 이 곳에서는 사진 촬용도 허용되었다. 전시물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이드는 관람객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관람객들에게 반대로 질문도 던지면서 흥미롭게 관람을 이끌었다.

2시간의 투어를 마치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진짜보다도 더 좋은 복제 전시도 있을 수 있다. 진짜 동굴을 방문했더라도 이렇게 많이 배우고, 이렇게 큰 감동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도 느낀 것이 많은지 하루 종일 벽화 이야기를 했다. 진짜 동굴에 갔다면 동굴을 스윽 돌고 나와 '대단하네' 하고 끝나지 않았을까. 역사, 문화, 예술, 기술 분야에서 프랑스의 저력을 보여주는 훌륭한 전시관이었다.



오후에는 베제흐 강에서 카누를 탔다.베네흐 강은 도르도뉴 강에 비해서 강폭이 좁고 볼거리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카누를 타는 사람이 훨씬 적어 조용하고 여유롭게 강을 만끽할 수 있었다.

Saint-Léon-sur-Vézère에서 출발하여 강을 따라 5km 정도 내려간 뒤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윤수가 직접 카누를 조종해보고 싶어해서 이번에는 2인용 카누를 두 개 빌렸다.

5km는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하지만 카누를 세울 수 있는 곳마다 멈춰서 간식을 먹고 물놀이를 하며 노느라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왜 뱃놀이를 신선놀음이라고 하는지 이제 잘 알 것 같다.

강 중간에서 누드 차림으로 수영을 하는 여자분을 만났다. 윤수가 보고는저 사람은 어른이 아니야? 왜 옷을 안입어?” 질문을 해서, 옷을 입지 않을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중에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해보니 누드 비치가 아닌 곳에서는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카누를 반납한 뒤 카누 회사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Saint-Léon-sur-Vézère 에 돌아왔다. 이 마을은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책에 베제흐 계곡의 보석으로 소개가 되었다. 이 지역의 다른 마을들처럼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로마로 가는 길이 있었고, 철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배가 다녔던 베제흐 강의 중요한 항구였다고 한다.

마을에는 12세기에 지어진 작은 로마네스크 교회가 있다. 여기서 매년 여름 페리고그 음악 축제가 열리는데 애석하게도 우리가 방문하기 전 주에 축제가 끝났다. 소규모 관객을 모아놓고 피아노 독주나 현악4중주를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은 교회였다.




이 날 마지막 일정으로 저녁을 먹으러 Montignac월요 야시장에 갔다. 강변주자창 가운데 테이블이 100여개가 놓이고 그 주변에 푸드 트럭들이 늘어섰다. 도르도뉴 요리 뿐만 아니라 햄버거, 피자, 인도 요리 등 다양한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아이스크림과 케익을 파는 디저트 트럭, 지역에서 나온 와인이나 호두, 푸아그라 등 특산품 가게도 있었다.

저녁 7시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갔는데 이미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재빨리 테이블을 잡고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사왔다. 아내는 푸아그라, 나는 오리 소시지, 윤수는 햄버거, 지수는 피시앤칩스를 먹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와인 매장에서 와인을 (여러 병) 사와서 마시고 있었지만, 한 병을 다 마실 용기가 없어 우리는 맥주를 사다 마셨다. 오랜만에 마시는 생맥주라 맛있었다.



네 식구 모두 디저트까지 챙겨서 배부르게 먹고 나와서 마을을 산책했다. Montinac은 라스코 동굴로 유명한 마을이지만 마을 자체도 예뻐서 둘러 볼만했다. 라스코로 가는 다리와 강에 비친 짙은 갈색의 건물들이 잘 어울렸다. 야시장에서 초대가수가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에게 아빠가 좋아했던 노래라고 이야기해주면서 오늘은 참 아름다운 여름 밤이라는 생각을 했다.

도르도뉴에 온지 벌써 닷새가 지났고, 이제 휴가가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내가 프랑스에서 가본 곳 중 도르도뉴가 제일 좋았다고, 아쉽다고, 다시 오게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