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프랑스 생활 버킷 리스트에 들어 있던 프로방스의 라벤더 밭을 보기 위해 아이들 여름 방학을 하자마자 여행을 떠났다. 라벤더 꽃을 보러 가는 여행이니 일정도 라벤더 꽃의 개화 시기에 맞추었다. 6월말에서 7월초가 라벤더 꽃이 가장 많이 피어 있는 시기이다.
파리에서 아비뇽까지는 700km. 쉬지 않고 운전을 해도 7시간이 걸린다. 아침 6시에 출발해서 교통체증 없이 파리를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리옹에서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네비게이션 어플리케이션은 계속해서 우회 도로를 안내했고, 열심히 가고 있는데도 도착까지 남은 시간이 줄어들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길가에 샛강이 보였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놀다가 가기로 했다. 강변에 돗자리를 깔아 놓고 간식을 먹고 물고기를 잡고 돌을 던지면서 놀았다. 길가의 과일 가게에서 살구와 복숭아도 사 먹었다. 프랑스에서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달고 맛있는데도 가격은 파리의 반도 하지 않았다.
아비뇽에는 오후 5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출발할 때 점심도 먹고 쉬엄쉬엄 가면 12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딱 맞았다. 아이들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해가 뜨거워서 남 프랑스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수영장이 있는 호텔을 예약하길 다행이었다.
다음 날 아침. 14세기 아비뇽 유수 때 교황들이 머물던 아비뇽 교황청에 갔다 유수라고 부르는 이유는 교황이 자발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프랑스 왕의 압력에 못 이겨서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비뇽 교황청은 궁전보다는 감옥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얼마 전 바티칸에 다녀왔던 기억이 생생해서 더 극명하게 비교가 되었다.
교황은 이곳을 떠나 바티칸으로 돌아갈 때 대부분의 수집품들을 가져갔다고 한다. 그래서 교황청 내부는 텅 비어 있다. 대신 14세기 당시의 모습을 히스토리 패드라는 태블릿을 통해서 증강현실로 볼 수 있다. 히스토리 패드를 하나씩 받은 아이들은 설명에는 관심이 없고 열심히 보물찾기 게임을 하러 다녔다.
교황청 안에는 볼 것이 별로 없었지만 옥상 전망대에서 보는 아비뇽 구시가지와 론 강의 풍경이 정말 멋 졌다. 아비뇽으로 잡혀 온 교황은 그래도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 갇혔다는 데서 위안을 조금 받았을까?
교황청에서 나오니 앞 광장에서 마술사가 마술 공연을 하려고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아이들은 묻지도 않고 뛰어가서 객석이 된 계단에 앉았다. 어른도 아이도 같이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마술사의 모자에 1인당 2유로씩 넣었다.
점심은 모로코 식당에 가서 쿠스쿠스를 먹었다. 회사 동료가 남 프랑스는 모로코와 가까워서 모로코 음식이 맛있으니 꼭 먹어보라고 추천을 해주었다. 아비뇽의 쿠스쿠스는 파리에서 먹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었다. 톡톡 씹히는 쿠스쿠스와 향이 깊은 토마토 소스, 쿠스쿠스 위에 올라간 소시지도 맛있었다.
오후에는 구시가지 구경을 하고 '아비뇽의 다리'로 유명한 생베제네 다리에 갔다. 12세기에 건설된 생베제네 다리는 수없이 무너져 보수를 거듭하다가 17세기때 홍수에 반이 유실된 후로 보수를 포기하였다. 반만 남아 있어서 다리로의 기능을 하지도 못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유명해져서 지금은 입장료를 받는 관광지가 되었다. 프랑스의 국민 동요 '아비뇽의 다리 위에서'의 배경이기도 하다
다음 일정으로는 30분 거리에 있는 고대 로마 수도교 '퐁 뒤 가르'에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가 너무 뜨거워서 포기하고 대신 호텔에 가서 해가 질때까지 수영장에서 놀았다.
저녁은 호텔에서 컵라면으로 때우고 바람이 선선 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야식을 먹으러 다시 구시가지에 나갔다. 호텔에서 구시가지에 들어가려면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빙 둘러서 간다. 아비뇽의 성벽은 14세기에 교황이 건설했다고 한다. 바티칸을 둘러싼 성벽보다 높이는 낮지만 모양이 비슷했다.
시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극장이 모여 있는 탕튈리에 거리에 갔다. 작은 운하를 따라서 키가 큰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었다. 극장에는 다음 주 아비뇽 연극제 때 무대에 오를 작품들의 포스터가 가득했다.
거리의 식당 중 한 곳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서 야식으로 햄 치즈 플레이트와 샐러드를 먹었다. 아이들은 운하에서 큰 물고기들을 발견해서 신이 났다. 아비뇽의 크림색 석조 건물들은 한낮보다는 해질 무렵에 훨씬 더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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