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 & 노르망디

브르타뉴 - 벨일앙메르 Belle-Île-en-Mer

커피대장 2024. 5. 23. 04:07

벨일앙메르 Belle-Île-en-Mer는 키브롱 반도에서 14km 떨어진 섬이다. 이름이 '바다 위의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으로, 보통 줄여서 벨일이라고 부른다. 

 

키브롱항에서 벨일까지는 페리로 40분 정도 걸린다. 페리 예매를 하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 세일 보트로 벨일을 왕복하는 Iliens라는 업체를 찾았다. 시간은 페리보다 두 배가 걸리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여기로 예약을 했다.

 

배는 오전 10시에 키브롱항에서 출발했다. 항구를 벗어나 돛을 올리니 배가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Iliens의 배는 쌍동선으로 가운데 그물이 설치되어 있어 위에 앉거나 누워서 갈 수 있었다. 우리도 그물에 누워 바다 바람을 맞으며 지나가는 요트들을 구경했다. 

 

바람이 좋아 예상보다 10분 빠른 1시간 20분 만에 벨일에 도착했다. 페리를 타면 벨일의 가장 큰 도시인 르 팔레 Le Palais로 가지만 우리의 배는 좀 더 작은 항구인 Sauzon에 정박했다.

 

 

 

 

 

 

벨일은 브리타니에서 가장 큰 섬으로 보통 차를 렌트해 일주하거나 자전거를 빌려 여행을 한다. 당일치기 도보여행자인 우리는 맛만 보기로 했다. 항구에서 바로 이어지는 해안절벽 산책로를 걷고 중간에 해변에 들려서 놀다가 돌아오는 일정이다. 

 

항구에서 40분 정도 걸어 Plage de Bordery 해변에 갈 거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니 빨리 바다에서 놀고 싶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점심이 다 될 때까지 바다에 발을 못 담갔으니 불만을 접수했다. 마을을 가로질러 가장 가까운  Plage de Port Puce 해변에 갔다.

 

해변에서 갯벌 생물들을 잡고 놀다가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벨일의 작은 해변에는 레스토랑이 없어 빵과 햄, 치즈를 사 왔다. 들고 다니기 좀 번거롭지만 그래도 바다에서는 피크닉이 최고다.  

 

해변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서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잠수복을 입고 게를 잡고 있었다. 잡은 게는 자로 크기를 재서 일정 크기가 되지 않는 것은 다시 바다에 놓아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게에 관심을 보이자 청년들의 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게를 한 마리 주셨다.

 

"이거 가지고 가서 먹어요. 15분만 쪄서 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얼떨결에 받아서 숙소까지 데리고 와서 잘 먹었다. 

 

 

 

 

 

 

 

점심을 먹고 원래 처음 가려고 했던 Plage de Bordery 해변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해안절벽 산책로를 걸었다. 절벽 위에는 노란 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찾아보니 프랑스어로는 아종 ajoncs, 한국어로는 금작화라고 부르는 꽃이었다. 꽃의 노란색이 초록색 잎과 파란 바다와 대조되어 예뻤다. 

 

산책로를 걸으며 벨일과 키브롱의 풍경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서는 보기 힘든 경관이다. 브르타뉴는 16세기에 프랑스에 흡수되기 전까지는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프랑스에 속한 뒤로도 지방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간직해 와 프랑스에서 가장 지역색이 강한 곳으로 꼽힌다. 언어와 문화는 땅과 뗼 수 없는 관계이니 프랑스에 쉽게 동화되기 힘들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lage de Bordery에는 해파리가 많이 있었다. 썰물때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바위 웅덩이에 끼어 있는 해파리들을 열심히 구조하고, 이미 말라죽은 해파리는 해부해서 관찰했다. 

 

해변에서 놀다가 다시 해안산책로를 걸어 Sauzon 항구로 돌아왔다. 왔던 길을 다시 걸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풍경이다.

 

 

 

 

 

 

 

 

Sauzon 항구에 도착해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아이들은 점심때 먹은 샌드위치로 모자랐는지 크레프와 와플을 주문해서 단숨에 해치웠다. 

 

다시 배에 올랐다. 선장님이 돛을 올리는 것을 도와줄 사람 네 명을 찾아서 자원했다. 다른 승객들의 응원을 받으며 열심히 밧줄을 당겼다. 처음에는 넷이서 당기다가 나중에 선장님이 답답했는지 합류를 했는데, 선장님이 몸을 실어서 밧줄에 매달리니 훨씬 수월해졌다. 전문가는 역시 다르다.

 

윤수는 그물에 누워서 책을 읽고 지수는 바다를 멍하니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뜨거운 봄햇살 아래 푹 자는 바람에 그만 얼굴이 발갛게 익어버렸다. 

 

구글맵에 배에서 돌고래를 봤다는 후기가 심심찮게 보여서 기대했지만 우리는 보지 못했다. 여행 내내 날씨가 환상적으로 좋앗으니 운이 나빴다는 말은 못 하겠다. 다음에 벨일을 한번 더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섬 일주를 해보고 싶다. 그때는 돌아오는 길에 돌고래도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