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모니에서 둘째 날. 전날 장거리 운전과 트레킹의 피로가 덜 풀렸지만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났다. 숙소 테라스에서 산을 보며 아침을 먹었다. 폭포 소리와 새소리가 들려왔다. 숙소 바로 옆 케이블카로 향하는 등산객들이 들뜬 목소리도 들렸다.
둘째 날 트레킹은 Brévent 전망대 주변을 돌기로 했다. 샤모니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Plan Praz까지 올라간 뒤에 Plan Parz에서 Brévent 케이블카로 갈아타면 해발 2525미터 Le Brévent까지 올라갈 수 있다.
여기서 Aiguillette des Houches까지 왕복 9km 하이킹을 하는 것이 최초 계획이었다. 하지만 전날 경험으로 산에서 아이들과 9km를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거리 대신 시간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일단 목적지를 향해 걷다가 2시간이 되면 돌아오기로 했다.
Le Brévent 전망대는 몽블랑 정면에 위치해 있어서 샤모니에서 몽블랑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아쉽게도 몽블랑은 하루 종일 구름 속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지만 반대쪽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서쪽으로 계곡과 산 평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었다. 그리고 그 사이 다양한 트레킹 코스들이 아스라이 이어져 있다.
전망대에서 브레방 호수 방향으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시작은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이었다. 아이들은 빠른 속도로 손쉽게 내려갔지만, 나중에 올라올 때를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 생각했던 목표 거리를 2시간에서 1시간 30분으로 줄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내려갈 때는 20분 밖에 걸리지 않았던 길이 올라올 때는 서너 번의 휴식을 가지면서 1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브레방의 트레킹 코스에는 락블랑 같은 랜드마크는 없지만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은 락블랑 코스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연못이 나오면 돌을 던지면서 놀고, 눈이 나오면 눈 놀이를 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여기서도 산양을 만났다. 정식 명칭을 찾아보니 알파인 아이벡스였다. 한가로이 풀을 뜯다가 사람들이 나타나면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산신령처럼 매끄럽게 타고 올라간다.
하늘과 맞닿은 산봉우리들, 구름 뒤에 있어도 존재감이 느껴지는 몽블랑을 배경으로 즐겁게 걸었다. 트레킹 코스의 초목은 은 배경의 흰색과 대비되어 더 선명한 녹색으로 보였다. 다시 전망대로 돌아오는 길에는 조금 고생을 했지만 정상에서 산바람을 맞으니 금방 피로가 풀렸다.
케이블카를 타고 Planpraz로 내려와 Bergerie de Planpraz 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산 위에 있는 식당이라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그릴에 구운 스테이크와 파스타, 샐러드 모두 훌륭했다.
점심을 먹고 Planpraz 전망대에서 커피를 마시며 산 풍경을 감상했다. Planpraz에는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이 잇어서 패러글라이더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윤수가 패러글라이딩을 해보고 싶어 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비싸기도 했지만, 아이가 언젠가 다시 샤모니를 방문했을 때를 위해 아껴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오후에는 Mer de Glace 빙하에 갔다. Mer de Glace는 프랑스어로 얼음의 바다라는 뜻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빙하 중 하나다. 7km 길이에, 가장 넓은 곳의 폭이 700m를 넘을 만큼 거대해서 맞은편 브레벙이나 인덱스 전망대에서 보면 처음 보는 사람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도전적인 사람들은 샤모니에서 걸어서 빙하에 가지만 우리는 이번에도 쉬운 방법을 택했다. 샤모니 몽땅베르역 Gare du Montenvers에서 몽땅베르 기차를 타면 20분만에 빙하에 도착할 수 있다. 귀여운 빨간색 두 칸짜리 등산열차를 타고 가는데, 창 밖으로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역에 도착해 빙하 전망대에 가니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빙하는 계곡의 바닥에 아주 조금만 남아 있었다. 얼음의 바다는 과거 흔적을 보며 상상을 해야 했다. Mer de Glaec는 지난 100년간 약 120m가 감소했고 길이는 매년 4~5m씩 짧아지고 있다고 한다. 감소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어서 21세기말에는 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전망대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빙하에 더 가까이 내려갔다. 케이블카에서 조금 전에는 착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빙하가 다 사라져서 계곡 바닥의 흙이 보인 것이 아니라 빙하 위에 흙이 덮여 있었다. 다행이다. 빙하의 두께가 100m 넘게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아직 100~200 가량이 남아있다고 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계단을 조금 걸으면 인공으로 만든 빙하 동굴 Grotte de Glace가 나온다. 방문객이 많았는데도 동굴 내부는 고요했다. 푸른 빛을 띠는 투명한 얼음 사이를 걷다 보면 자연의 경의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들은 5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얼음 속에 혹시 화석이 있는지 열심히 찾아봤다.
빙하는 일 년에 90m가량 아래로 흐른다고 한다. 그래서 동굴은 거의 매년 다시 만들어진다. 빙하가 손상되는 것을 우려하여 동굴 조성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샤모니시는 동굴을 방문한 사람들이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느끼고 돌아가서 다른 사람들과 이를 공유했을 때 효과가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우리도 방문을 했으니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마다 빙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샤모니로 돌아오는 길에 몽땅베르 기차역에서 산악회에서 단체로 오신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났다. 윤수가 맛동산을 드시는 아저씨를 빤히 처다봤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께서 '너 이거 먹고 싶구나' 하며 아저씨에게 과자 봉지를 뺐어 아이에게 주시고는 줄을 서있던 일행에게 큰 목소리로 외치셨다.
"맛동산! 맛동산 있는 사람!"
플랫폼 여기저기서 릴레이로 맛동산이 울려퍼졌고, 우리는 순식간에 한국 과자와 초컬릿, 양갱을 잔뜩 받았다. 오늘 여행이 끝나서 비상 식량이 더 이상 필요 없다며 일행 분들이 들고 있던 과자를 모두 모아서 주신 것이다. 이런 호의는 사양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감사히 받아 와서 파리에서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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