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모니에서 케이블카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은 에귀뒤미디 Aiguille du Midi 전망대이다. 몽블랑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샤모니에서 인기가 가장 많다. 성수기에는 케이블카를 타는데만 한 시간 넘게 기다리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침 일찍 가기로 했다.
몽블랑 멀티패스를 구매할 때 에귀디미디 케이블카 탑승 시간 예약을 할 수 있다. 고산지대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뒤에 올라가려고 여행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시간에 예약을 했다. 덕분에 대기 시간 없이 케이블카에 탑승할 수 있었다. 중간에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Aiguille du Midi까지 오른 뒤 여기서 바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갔다.
정상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Le Pas dans le vide에 방문했다. 이곳은 5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큐브 형태로,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에귀뒤미디의 포토 스팟으로 인기가 가장 많은 곳이다. 10분 정도 기다린 끝에 우리 차례가 되었다. 바닥까지 유리로 되어 있어 정말 하늘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숙제를 끝냈으니 여유 있게 전망대를 둘러보았다. 해발 3,842미터의 Aiguille du Midi 정상에서는 360도 파노라마로 알프스를 볼 수 있었다. 날씨가 맑아서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산맥들까지 보였다. 거대한 바위이 눈에 덮혀 있는 풍경은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몽롱하고 속이 메스껍고 가슴이 답답한 고산병 증세도 비현실적인 느낌을 부추겼다.
몽블랑은 정상이 살짝 구름에 가려 있었다. 구름은 금방 날아갈 것처럼 움직였지만 신기하게도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샤모니에 온 첫날 몽블랑을 볼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에는 저산소증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전시실이 있었다. 고도에 따른 산소 농도의 변화가 그려진 그래프를 보니 에귀디미디의 산소 농도는 해수면 산소 농도의 63%밖에 되지 않았다.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이 이해가 되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정상은 33%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케이블카 건설 과정을 설명해놓은 자료실도 있었다. 에귀디미디는 1955년에 건설이 되었다. 작업자들이 절벽에 매달려 눈, 바람, 추위와 싸우며 작업을 하는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당시 기술과 장비는 오늘날에 비하면 아주 제한적이었고, 많은 작업이 수작업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돈도 많이 들었겠지만, 그것보다 작업자들의 인내와 용기가 이뤄낸 성취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귀뒤미디에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국경을 넘는 특별한 경험을 해볼 수도 있다. 파노라믹 몽블랑 Panoramic Mont Blanc 케이블카가 에귀디미디와 이탈리아의 Pointe Helbronner 전망대를 연결한다. 무려 5km 길이의 케이블카로 몽블랑을 배경으로 빙하 위를 가로질러 이동한다.
파노라믹 몽블랑은 몽블랑 멀티 패스에 포함되지 않아 별도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4명 가족 패키지 왕복 요금이 120유로가 넘었다. 너무 비싸서 고민을 했지만, 여름과 겨울 시즌에, 날씨가 좋을 때만 운행한다고 하니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을 누리기로 했다.
파노라믹 몽블랑은 4인승 케이블카가 3대씩 짝을 지어 이동한다. 작은 케이블카가 세 쌍둥이처럼 알프스 위를 날아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케이블카는 경로 중간에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서 잠깐씩 멈춰서 풍경을 감상할 시간을 준다. 120유로가 전혀 아깝지 않은 장관이었다.
아래로는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거대한 빙하가 보인다. 케이블카가 빙하 가까이 내려갔을 때는 크레바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빙하에서 스키를 타는 사람들, 몽블랑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단한 모험가들이다.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카페에 가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이탈리아에 갔으니 에스프레소를 마신다는 상징적인 의미였지 딱히 맛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웬걸, 향이 풍부하고 맛이 진한 리스트레토를 내왔다. 전망대 카페에서도 이런 커피를 마실 수 있다니. 김동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몽블랑을 이탈리아어로 몬테 비앙코라 Monte Bianco라고 부른다. Pointe Helbronner 전망대에서 북쪽으로는 구름이 가득 껴서 몬테 비앙코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산 아래쪽의 풍경은 잘 보였는데, 프랑스 알프스보다 산세가 부드럽고 완만해서 평화로는 느낌을 주었다.
여기서 케이블카로 이탈리아의 쿠르마외르 Courmayeur에 갈 수 있다. 스키와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휴양 도시로 프랑스 샤모니의 이탈리아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이탈리아에서 보는 몽블랑의 남쪽 풍경은 프랑스에서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다음에는 이탈리아 알프스를 보러 올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Pointe Helbronner 에는 산과 등반을 주제로 한 책들과 기념품을 파는 서점이 있었다. 서점 간판에 The highest bookshop in Europe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런건 정말 자랑할만하다. 기념품으로 아이들 가방에 붙일 패치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보낼 엽서를 사서 에귀디미디로 돌아왔다.
에귀디미디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Plan de l'Aiguille로 내려왔다. 고산병 증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고산지대를 신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신의 세계에서 사람의 세계로 내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3,842m가 신이 사는 곳처럼 느껴진다면 해발 8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산맥은 어떤 곳일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오른 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도전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Plan de l'Aiguille의 매점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평범한 샌드위치였지만 에귀디미디를 보며 먹는 샌드위치는 특별했다. 고산병에서 해방된 안정감과 익숙한 공기를 느끼며 정상으로 부지런히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케이블카를 구경했다.
그냥 샤모니로 내려가기는 아쉬워 1km 거리에 있는 Lac Bleu로 짧은 트레킹을 했다. 샤모니를 내려다보며 푸른 초원을 걷는 쉬운 코스다. 이제 산행이 익숙해진 아이들은 코스에서 벗어나 들판을 마음대로 뛰어다녔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 뛰어노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 같아 뿌듯했다.
Lac Bleu는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호수라 에메랄드빛이었다. 아이들은 물가에서 장난을 치고, 아내는 그림을 그렸다. 호숫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호수 건너편으로 보이는 에귀뒤미디는 구름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다음 날에는 하루 종일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맞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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