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코트다쥐르

남프랑스 Sausset-les-Pins 2

커피대장 2023. 6. 14. 06:08

여행 셋째 날. 일어나서 거실에 나가보니 다니엘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게트와 버터, 잼, 요구르트, 올리브를 넣고 올리브 오일을 발라 구운 남프랑스 빵 푸가스 Fougasse 도 있었다. 다니엘을 도와 식탁을 차리고 커피를 내렸다. 
 
이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어른들은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하며 긴 아침 식사를 하고, 아이들은 책을 읽었다. 다니엘이 손자 장난감이라면서 보드 게임을 내왔다. 본인이 가지고 놀려고 들고 나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오후에는 다니엘과 실비와 마르세유에 가기로 했다. 집에서 계속 얻어 먹기만 해서 마르세유에 가면 우리가 점심을 살 계획이었다. 그런데 실비가 시간이 많이 없으니 크로크 무슈를 대충 해 먹자고 했다. 결국 또 얻어 먹었다. 
 
 

 
 

 
 

다 같이 마르세유의 코스케 동굴 Grotte Cosquer에 갔다. 1991년 다이버인 앙리 코스케는 마르세유 근처 카시스에서 해저 37m 지점에 있는 구멍을 발견했다. 구멍 따라 150m를 거슬러 올라가니 동굴이 나왔고, 동굴에는 놀랍게도 2만 7000년 전에 그려진 벽화가 있었다.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입구가 물에 잠겼고, 그 덕분에 벽화가 훼손되지 않고 완벽하게 보존된 것이다. 
 
동굴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전문 다이버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대신 마르세유에 동굴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다. 다이빙 클럽처럼 꾸며놓은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린 후 지하 37미터 (사실은 2층)으로 내려간다. 여기서 작은 관람차를 타고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30분간 복제 동굴을 돌며 벽화를 감상한다.
 
관람이 끝나면 3층으로 이동한다. 여기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한 전시물들을 볼 수 있다. 동굴 벽화에 등장한 동물의 모형도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했다. 전망대에서는 마르세유항구를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코르시카 섬으로 가는 대형 선박을 감탄하며 보자 실비가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고,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었다. 
 
 

 
Cosquer Méditerranée - Site officiel de la restitution de la Grotte Cosquer (grotte-cosquer.com)
 
 

 
 

 
이 날은 다니엘이 시내 투어 가이드가 되었다. 마르세유 대성당 앞에서 출발해서 마르세유 구시가지 르 파니에 Le Panier를 산책했다. 아틀리에와 카페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작은 광장들이 나왔다. 이탈리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걷다 보니 나는 다니엘과 걷고 아내는 실비는 뒤쳐져서 무슨 이야긴지 열심히 대화를 하고 있었다.  
 
"너랑 일하면서 우리가 꽤 잘 맞는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아내들도 그런 것 같네?"
"그러게. 금방 친해졌어."
 
걷기 투어를 마치고 다니엘이 좋아한다는 초콜릿 가게에 가서 시그니쳐 메뉴라는 올리브향 초콜릿을 샀다. 초콜릿 가게 옆에는 전통 과자 나베트 Navettes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나눠먹으려고 두 봉지 샀는데 이런, 현금 밖에 받지 않는다고 한다. 
 
"다니엘...혹시 현금 있어?"
 
얻어먹기의 끝판왕이다. 집에 오는 차에서 나베트를 먹었다. 오렌지향이 은은하게 났다. 
 
 

 
 

 
실비가 호기심에 사놓은 김치가 있다고 해서 저녁에는 김치전을 해 먹기로 했다. 실비가 조심스럽게 냉장고에서 꺼낸 김치는 프랑스 회사가 양배추로 만든 김치였다. 그러니까 이건 가짜다. 근심에 빠진 아내에게 말했다.
 
"이거 맛있으면 그냥 가만히 있고, 맛이 없으면 김치가 가짜여서 그렇다고 하자."
 
아내가 실비에게 김치전 비법을 전수하는 동안 다니엘은 식전주로 파스티스 Pastis를 꺼내왔다. 아니스로 만든 술인 파스티스는 알코올 농도가 50도가 넘어서 보통 물을 타서 마신다. 물을 타기 전에 아이들에게 다니엘이 마술을 보여줄 거라고 이야기했다. 내 의도를 눈치챈 다니엘이 "아브라카타브라!"를 외치고 물을 넣었다. 아니스 베이스의 술은 물이 들어가면 흰색으로 변한다. 아이들은 마법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김치가 많지 않아서 김치전은 전식으로 조금씩 나눠 먹었다. 걱정과는 달리 괜찮았다. 한국 사람들과 3년 동안 일하면서 한국 음식에 나름 일가견이 생긴 다니엘이 맛있다고 판정을 해주었다. 본식은 다니엘이 피자를 테이크아웃해왔다. 염소 치즈가 올라간 코르시카 피자가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시는 동안 아이들이 갑자기 창작 이야기 대회를 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다니엘과 실비가 말을 걸명 예 아니오로만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마르세유 다녀오면서 친해졌는지, 아니면 다니엘의 마법에 넘어갔는지 갑자기 긴장을 모두 풀었다. 그리고 3일 동안 쌓인 말들을 쏟아냈다. 손자가 있는 다니엘과 실비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이야기에 열광적으로 반응해 주었다. 
 

 
여행 마지막 날. 오전에 비가 오지 않아 근처 마을 Carro에 갔다. Sausse가 은퇴한 사람들의 휴양지 느낌인데 반해 Carro는 어촌이었다. 항구에는 요트는 거의 없고 어선이 대부분 정박해있었다.
 
항구 바로 옆에는 어시장이 있었다. 지수가 좋아하는 황새치의 대가리를 팔고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물고기 파는 상인이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사진이 더 잘 나오도록 참치 대가리와 돛새치 대가리를 아이 옆에 예쁘게 놓아주셨다. 역시 시골 인심이 좋다. 
 
등대 옆 해변에서 조금 놀다가 비가 내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으로는 실비가 연어 요리를 해주셨다. 사흘 내내 얻어 먹을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 같이 레스토랑에 다 같이 가자고 제안해 놨으나, 이미 재료를 다 준비해 두셨다. 결국 사흘 내내 얻어먹게 되었다. 
 
 

 

 
오후에는 근처에 여행을 와 있던 친구 가족도 합류해서 티 타임을 가졌다. 차를 마시는 동안 비가 그쳐서 다 같이 나가 페탕크를 했다. 페탕크는 남프랑스에서 시작된 프랑스 국민 구슬치기다. 공원에 가면 다 큰 어른들이 진지하게, 열심히 쇠구슬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막상 해보면 이거 열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페탕크를 하고 또 다시 해변에 가서 바위틈에 살고 있는 게와 새우를 잡았다. 항구까지 산책을 하고 항구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은 뒤 작별 인사를 했다. 아이가 더 놀다 가고 싶다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흘 내내 비가 왔지만 그래도 즐거운 여행이었다. 카시스 Cassis 트레킹을 빼고는 계획했던 것을 다 했다. 이걸 핑계 삼아서 다음에 또 와야겠다. 그때는 꼭 다니엘과 실비에게 꼭 크게 한 턱 내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