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근교/일기

루브르 박물관 Sully관 308호

커피대장 2024. 10. 9. 16:16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항상 이란의 유물이 전시된 SULLY관 308호를 찾는다. 내가 지금까지 여행을 가본 나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이란이다.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에 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설렌다. 루브르의 이란 전시실에 들어서면 이란 여행의 추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곳에는 이란의 고대 도시 수사에서 가져온 유물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수사는 기원전 4천년 엘람인들이 건설한 도시다.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 제국의 황금기를 통치한  다리우스 1세가  이곳에 거대한 궁전을 건설하였다. 하지만 페르시아 제국은 겨우 2세기 밖에 가지 못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당한다. 그 후 수사 궁전은 파괴되고 잊혀져 사막의 모래 속에 묻힌다.

궁전은 천년이 넘게 흐른 뒤1884년부터 프랑스 고고학자들에게 발굴되었고, 발굴한 유물들은 루브르에 전시되었다. 전시실에 들어가면 한가운데 다리우스 황제의 궁전기둥 끝부분에 있던 머리장식이 하나 우뚝 서있다. 머리장식만으로도 전시실이 가득차니 실제 기둥이 얼마나 컷을지 상상이 된다. 기둥 주변에는 궁전의 외벽을 장식했던 대형 벽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채색한 벽돌로 만든 벽화로 군인이나 사자가 조각되어 있는데, 2500년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정도로 잘 보존이 되어있다.

궁전 주변에서 발굴된 엘람인들의 유물도 흥미롭다. 기원전 1500년전의 무덤에서 발굴된 나신상과 테라코타에는 의복이나 표정까지 세세하게 조각이 되었다. 기원전 1200년전 수사의 아크로폴리스를 장식했던 거대한 사자상도 아름답다.  


 그런데 기둥도, 벽화도 다 여기있으면 이란 수사에는 뭐가 남아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궁전터에는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란을 여행할때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의 상당수가 복제품이어서 안타까웠다. 진품은 대부분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등 유럽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도 테헤란국립박물관에는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고 안내에 "진품은 루브르에 있음. 반환 요구 중"이라고 적혀있다.

이란의 유물들이 본격적으로 발굴된 1900년대 초반에 이란은 유물을 보관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테헤란국립박물관은 1937년에 건립이되었으니 당시 발견된 파리로 가져오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란이 이제 우리가 잘 전시할 수 있으니 돌려달라고 한다면? 돌려줘야 할까?

얼마 전 프랑스는 옛 식민지 베냉에서 반환 요구를 하고 있는 '약탈 문화재' 중 일부를 베냉에 반환했다. 아프리카의 문화재 중 90%가 유럽에 있음을 고려하면 아주 미미하지만 그래도 시작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합법적으로 가져온 문화재들이다. 합법적이었다는 것이 공정한 계약에 의해 가져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탈과는 분명 다르다. 수사의 유물들도 합법적으로 프랑스로 가져온 것들이다.

유물은 발견된 곳에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수사궁전의 기둥은 궁전터에 그대로 있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린다. 벽화는 궁전터 근처의 박물관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수사에 있을 때보다는 루브르에 있을 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감상을 할 수 있다. 그럼 루브르에 있는 것이 더 인류에 좋은걸까? (프랑스 정부가 이란에 반환하고 이란에서 임대하여 루브르에 전시를 해서 소유권 문제는 없다고 치자)

물론 정답은 없다. 나중에 아이들이 유럽의 식민지 개척 역사에 대해 배우게 되면 같이 이야기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