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주말에도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난다. 여행 중에도 마찬가지라 식구들이 자는 동안 혼자 숙소를 나와 산책을 하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니스 여행 사흘째 아침.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산책을 나가려는데 아이들이 깨어났다. 당연히 안갈줄 알고 '산책 나갈 건데 같이 갈래?' 물었는데 웬일로 같이 가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조용한 아침 산책이 아이들을 동반한 시끌벅적한 산책으로 바뀌었다. 영국인의 산책길을 걷고 카페에 들러 따듯한 음료를 한잔씩 마셨다.
느즈막이 숙소에서 나온 아내와 살레야 시장 Marché Saleya에서 만났다. 살레야 시장은 니스 시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꽃 시장이다. 겨울임에도 형형색색의 꽃과 식물들이 가득했다. 꽃 뿐만 아니라 식료품, 간단한 요리, 기념품, 골동품도 판매하고 있어 시장이 열리는 오전 내내 활기가 넘친다.
이른 아침 산책에 배가 고파진 아이들은 시장에서 연어 키쉬를 사먹었다. 니시의 특산물인 병아리콩 전병 소카 Socca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현금이 없어서 다음으로 미루었다. 니스에서는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한 번은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못 먹어보고 오게 되었다.
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샤갈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샤갈은 벨라루스에서 태어났지만, 예술가로서 전성기를 프랑스에서 보냈고,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특히 노년에는 니스와 생폴드방스 같은 지중해 지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작품을 남겼다. 니스의 샤갈 미술관은 샤갈 본인이 미술관 설계에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샤갈 미술관에는 그가 성경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린 회화가 주로 전시되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과 대형 모자이크 작품도 감상할 수 있었다. 올리브 나무가 심어진 미술관의 정원이 정말 아름다웠다. 작품을 보고 나와서 아이들이 정원에서 노는 동안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샤갈 미술관에서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만났다. 정원 카페에서 100세를 바라보는 할머니를 만났는데, 손자들이 마음대로 비행기표를 끊어 억지로 데려왔다며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서 하소연의 형식을 빌린 자랑을 열심히 맞장구를 치며 들어드렸다.
오후에는 모래사장을 찾아 니스의 이웃 도시 빌프랑슈쉬르메르 Villefranche-sur-Mer 에 갔다. 빌프랑슈는 망통행 기차를 타면 5분만에 갈 수 있지만, 우리가 방문한 날은 철로 점검으로 운행이 전면 중단되어 우버를 타고 갔다.
아이들은 모래사장에서 놀고, 아내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산책을 했다. 전날 기차를 타고 망통으로 가는 길에 차창으로 본 빌프랑슈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기찻길 근처에서 빌프랑슈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마을 뒤 언덕 도로변에 전망대가 있었다. 계단을 많이 올라가야 했지만 탁 트인 풍경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해질 무렵에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올라와야겠다 생각했다.
다시 해변으로 내려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마을 구경을 했다. 빌프랑슈의 구시가지는 중세 시대에 형성이 되었는데, 지금도 그 떄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계단식 거리와 13세기에 만들어진 건물 사이의 어두운 골목 뤼 오브스퀴르 Roe Obscure가 특히 눈에 띄었다. 화가 장 콕토가 내부를 장식해서 유명해진 세인트 피에르 채플은 겨울 비수기에는 문을 닫아 들어가보지 못했다.
마을 카페에서 젤라토를 하나씩 사먹고 다시 전망대에 올라갔다. 마침 해가 지는 시간이라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 서쪽으로는 빌프랑슈가, 동쪽으로는 생장캅페라 Saint-Jean-Cap-Ferrat 반도가 보였다. 생장캅페라는 고급 빌라가 줄지어 있는 휴양지로, 아름다운 해변이 많다고 한다. 바위 절벽과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에 가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해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했다.
호텔에 돌아와서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랭피아 항구 Port Lympia 로 갔다. 모나코에서 만난던 아이 친구들의 가족도 니스에 머물고 있어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생선 요리와 홍합 요리를 먹고 와인을 마셨다.
몇일 동안 쬔 남부의 태양과 와인에 기분이 좋아진 어른들의 대화가 길어졌다. 덕분에 어린이들은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스크린 제한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어른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가끔씩 이런 일탈이 필요하다.
저녁 식사 후에는 항구 주변을 산책했다. 항구에는 크고 작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다. 제일 큰 요트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는데 마침 판매 중이었다. 판매 가격은 무려 300억원.
"한 가족당 100억씩 내면 되겠다."
"12인승 요트인데 승무원이 13명 필요하대. "
"우리가 12명이니까 딱 맞네. 승무원 13명만 구하면 내일 바로 이거 타고 파리로 갈 수 있겠어."
어른들이 농담을 주고 받는 동안 아이들은 광장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신나게 뛰어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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