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코트다쥐르

코트다쥐르 Côte d'Azur - 칸 Cannes

커피대장 2024. 12. 8. 16:06

니스 여행 마지막 날.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서 일출을 보러 나갔다. 바다를 겨울에 여행하면 장점이 그리 많지 않지만, 새벽같이 일어나지 않아도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참 좋다. 붉게 물든 하늘 위로 해가 떠오르자, 아침 조깅을 하던 사람들도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덴마크인 친구가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카페 코펜하겐 커피 랩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시나몬 빵과 바게트를 샀다. 호텔에 돌아와 아침으로 빵을 먹으며 아내와 니스에서 할만한 일들을 검색해 봤지만 마음을 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즉흥적으로 칸 Cannes에 가기로 했다. 마침 니스에서 파리로 가는 열차가 칸에 정차하니, 칸에서 놀다가 예정된 열차를 칸에서 타고 파리에 가기로 했다. 
 

 
 

 
 
 
니스 역에서 TER 열차를 타고 칸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펼쳐진 지중해의 풍경은 말 그대로 그림 같았고, 앙티브 Antibes를 지날 때는 이렇게 지나쳐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아쉬울 만큼 아름다웠다. 그렇게 30분쯤 달려 칸에 도착했다. 칸 역 바로 맞은편에 있는 짐 보관 서비스 업체에 여행가방을 맡기고, 곧바로 해변으로 갔다. 
 
칸의 모래사장에는 코트다쥐르에서 갔던 곳 중 가장 고운 모래가 있었다. 니스의 해변은 자갈로 이루어져 있었고, 모래를 찾아갔던 망통과 빌프랑슈의 모래사장도 모래성을 쌓기에는 너무 굵었다. 칸에서 드디어 부드럽고 고운 모래를 만난 아이들은 신나게 모래성을 쌓았다.
 
아이들은 바다에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싶더니 결국 입수를 했다. 반팔을 입어야 할 만큼 해가 뜨거운 날이었지만, 그래도 12월 1일의 바닷물은 차가웠다. 바다에 뛰어든 패기는 3분 만에 꺾였고, 아이들은 '아빠. 옷 가져왔지? 갈아입을래.' 이야기했다. 그래. 아빠는 항상 여분의 옷을 들고 다닌다.
 
 
 

 
 
 

 
 
 
칸은 영화의 도시이다. 칸 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벌에 가보았다. 레드 카펫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영화인들의 손도장을 둘러보며 익숙한 이름들을 찾아봤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역대 영화제 포스터들도 구경했다. 
 
대학생 시절 나는 영화광이었다. 칸영화제 수상작은 빠짐없이 챙겨봤고, 언젠가 한 번은 칸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 이제는 영화를 한 달에 한 편 볼까 말까 한 나는 칸에 갔음에도 그리 큰 감흥이 없었다. 20년의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시장 구경을 하고 시장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레스토랑 이름도 '시장 옆 côtémarché'이었다. 니스를 여행하면서 제대로 된 해산물을 못 먹은 게 아쉬워서,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해 이곳을 예약했다. 전날 저녁 생선 요리를 먹기는 했지만, 영국 사람들이 예약한 레스토랑은 해산물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한국인의 입맛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모둠 해산물 구이, 문어 요리, 오징어 요리, 해산물 파스타를 주문했다. 가격이 다소 비쌌지만, 요리의 퀄리티를 고려하면 오히려 오히려 아주 저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양도 푸짐하고, 보기에도 예뻤으며, 무엇보다 맛이 일품이었다. 주재료도, 곁들어 나온 야채도 훌륭했다. 아내와 '이건 대체 어떻게 요리를 한 건지?' 감탄을 하면서 먹었다. 아이들도 순식간에 한 접시씩 비워냈다.
 
식당에서 나오는 길에 셰프를 만나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보통 이렇게 칭찬하면 신선한 재료나 특별한 소스 이야기를 꺼내며 본인의 요리에 대해 설명하기 마련인데, 이 식당의 셰프는 단 한마디, 'Merci'만 남겼다. 마치 '맛있는 것 다 알고 있다', '맛있을 수밖에 없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요리 장인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오후에는 칸의 구시가지 르 쉬케 Le Suquet 를 걸어 보았다. 영화제가 열리는 해변은 하얀색으로 칠해진 리조트들이 늘어서 있어 고급 휴양지의 분위기를 풍겼지만, 바로 옆 구시가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과거의 소박한 어촌 마을 같은 정취가 느껴졌다.

 

돌로 된 건물 사이로 이어진 좁은 골목길을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오르니 칸의 항구와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전망대에 설치된 "CANNES" 이라고 적힌 대형 간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간판은 언덕 아래에서 보이도록 적혀 있어서, 간판 뒤쪽인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은 글자가 좌우가 바뀐다. 아이들에게 사진을 좌우반전 시켜 제대로 읽히게 바꾸는 방법을 보여주었더니, 아이들은 그걸 응용해 사진을 상하반전 시켜 하늘에 거꾸로 매달려 걸어 다니는 사진을 만들며 놀았다.

  1.  

 



 

항구 앞 광장에는 골동품 시장이 열렸다. 주로 명품 액세서리, 옷, 식기, 인테리어 소품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다. 아내가 마음에 드는 접시 세트를 발견했다.
 
"이거 얼마예요?"
"1,996유로요"
 
1000이라는 숫자를 들었을 때 남부지방 사투리를 잘못 들었나 생각을 했지만 정말 1000이 맞았다. 아내는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계속 예쁜 그릇들을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같은 광장에 크리스마스 마켓도 열렸다. 방금 바다에서 수영을 했는데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있으니 뭔가 좀 어색했다. 예쁘게 장식한 부스들은 우중충한 겨울의 파리에서는 돋보였을지 몰라도, 니스에서는 햇빛을 받아 빛나는 파스텔톤 건물들에 묻혀버렸다.

뱅쇼, 소시지, 라클렛 같은 크리스마스 마켓 음식들도 별로 끌리지 않았다. 아이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전혀 안 난다고, 젤라토가 먹고 싶다고 했다. 마켓에서 빠져나와 젤라토를 사서 야외 테라스에 앉아서 먹었다.

 

 
 

 

 파리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창밖으로 지중해의 일몰을 볼 수 있었다. 나흘 동안 햇빛을 실컷 즐겼는데,  이렇게 마지막 선물까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