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바다에 나갔다. 이 날은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그래서 윈드서핑과 카이트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이 많았다. 카이트에 바람을 가득 담고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2~30대가 대부분이었지만 60대로 보이는 젊은 형님들과 백발의 할아버지도 있었다. 60대가 되어도 바람이 불때마다 설레는 가슴으로 보드를 들고 바다에 나갈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울산에 살 때 윈드서핑을 배워본 적이 있다. 보드에 올라서 균형을 잡고 세일을 끌어올려서 잡는 데만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힘겹게 세일을 잡아도 물에 빠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도 바람을 받아 앞으로 보드가 나아갈 때는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바람이 부는 바다에 다시 살게 된다면 카이트 서핑을 배워보고 싶다.
바람이 차서 아이들이 물에 들어가기는 힘들었다. 대신 모래 놀이를 했다. 물이 막 빠지고 있어서 모래를 조금 파면 바닷물이 나왔다. 모래를 파서 물길을 만들어 바닷물을 이리저리 옮겨 가며 정신없이 놀았다.
"너희들 안 추워?"
"뭐가? 아빠 여기 한번 파 봐"
의미 없는 질문을 했다. 일드레가 윈드서핑의 성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연을 들고 왔다. 연을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면 바로 하늘로 올라갔다. 뛰거나 바람 방향을 맞추려고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연날리기가 이렇게 쉬웠나?
오후에는 La Flotte에 갔다. La Flotte도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들 Les Plus Beaux Villages' 로 선정된 159개의 마을 중 하나다.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선정 협회는 1982년에 지방의 작은 마을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마을 주민이 2,00명 이하고 문화 유산을 2개 이상 보유해야 하며 그 외에도 많은 조건을 만족해야 라벨이 주어진다. 선정된 마을은 관리를 유산을 계속해서 관리하고 친환경 관광 상품을 계속 개발해야 정기 점검에서 라벨을 지킬 수 있다.
선정 기준이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마을 기준과 일치하는지 지금까지 아름다운 마을 라벨을 받은 마을은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협회에서 출판한 가이드북을 사 놓고 보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아서 방문하고 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할 때 가는 길에 아름다운 마을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으면 중간에 들려서 쉬었다 가는 식이다.
La Flotte는 작은 항구 마을이다. 항구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돼지고기 전문 식당이었다. 아내와 나는 돼지고기 요리를 먹고 아이들은 버거를 먹었다. 프랑스에서 먹어본 돼지고기 중 손꼽을 만큼 맛이 있었다.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서버 아저씨가 재미있었다.
"저는 주문을 받고 싶은데 주방에 있는 나의 동료는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요. 빨리 주문해요!"
"미안하지만 오후 장사 끝났습니다." / "저 1시 반에 예약했는데요?" / "아하! 그렇다면 들어오세요!"
"식탁 위에 냅킨을 좀 집어서 아기처럼 무릎 위에 놓을래요? 제가 접시 놓을 자리가 없어요."
불친절한듯 친절한 분위기 속에서 디저트까지 맛있게 먹었다.
항구를 둘러보고 La Flotte의 두 가지 문화유산을 찾아갔다. Abbaye des Chateliers는 12세기에 지어진 수도원이다. 당시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수도원 중 하나였으나 영국과의 전쟁 중에 파괴되었다. 여기에서 나온 석재는 대부분 17세기에 바로 옆의 요새 Fort La Pree를 건설하는데 사용되었다.
지금은 예배당의 벽만 남아 있다. 북쪽 벽은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는데 창문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과거에는 수도사들이 살았을 건물의 잔해에서 도마뱀을 발견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쫓고 쫓기는 긴 싸움은 도마뱀이 돌 사이의 구멍으로 도망치면서 끝이 났다.
두번째 문화 유산은 영국의 침략에 대비해 지어진 요새 Fort La Pree다. 수도원에서 요새까지는 바다를 조망하는 멋진 산책로가 있지만 해가 너무 뜨거워 우리는 차를 타고 갔다.
요새는 바다와 인접한 성벽과 그 안에 지어진 사각형 모양의 성의 이중 구조로 건설되었다. 안쪽의 성은 동서남북으로 뾰족하게 돌출되어 별처럼 보였다. 2차대전때는 나치가 영국의 해군과 공군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통신기지로 활용했다고 한다. 당시에 건설된 라디오 기지 안에는 2차대전때 섬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차가운 시멘트 벽이 아름다운 바다와 대비되어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요새에서 아이들은 도마뱀을 다시 발견했고, 이번에는 모자를 활용해 포획에 성공했다. 나는 요새 밖에서 포도밭을 발견했다. 일드레에는 로제 와인이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섬 어디에서나 포도밭이 보였다. 바닷바람을 맞은 포도로 만든 와인은 다를까 궁금했는데, 마셔보니 다른 로제 와인과 비슷했다.
숙소에 돌아와 조금 쉬다가 다시 바다에 나갔다. 바람이 멎고 해가 나니 서퍼들은 사라지고 빈자리는 가족과 연인들이 가득 채웠다. 윤수는 이제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놀 수 있게 되었다. 지수는 아직 발이 닿지 않으면 무서워하지만 그래도 발도 못 담그던 작년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
해변에 누워 책을 읽다가 몸이 뜨거워지면 바다에 들어가 식히고 나와서 다시 책을 읽었다. 집에서는 잘 안 읽게 되는 두껍고 어려운 책을 들고 갔는데 일드레에서 4박 5일동안에도 거의 안 읽었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고 읽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에세이나 한 권 들고 올 것을.
숙소에 들어와서 저녁을 먹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 같이 마당에 나갔다. 숙소의 불을 모두 끄고 마당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빠! 별이 점점 더 많아져!”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하늘이 별로 가득 찼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던 아이들은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오랫동안 이 날 밤 본 별을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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