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브르타뉴 & 노르망디

노르망디 - 디에프 Dieppe

커피대장 2022. 12. 3. 14:26

지수와 약속한대로 여름이 가기 전에 다시 바다에 갔다. 여름 노르망디에 숙소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호텔 사이트와 공유숙박 사이트를 수시로 드나든 끝에 디에프에 다른 사람이 취소한 숙소를 예약하는데 성공했다.

 

디에프는 자갈 해변이라 아이들이 잘 놀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썰물때는 갯벌이 드러났다. 썰물 때마다 바다에 나갔다.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고 파도를 쫓아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이번에도 작은 물고기, 새우, 소라게를 잔뜩 잡아서 관찰했다. 소라게가 모래를 파고 들어가는 건 내가 봐도 신기했다. 윤수가 근처에 있던 동네 꼬마에게 게 잡는 법을 배워왔다.

 

"아빠. 게는 햇빛을 싫어해서 바위 밑에 숨어있어. 그래서 바위 밑을 뒤지면 많이 나와."

"아까 형이 프랑스 말로 이야기하던데. 알아들은 거야?"

"몰라. 그냥 이해되던데. 거기 돌 얼른 뒤집어봐"

 

아이들끼리 말로 하지 않아도 통했을 텐데. 아빠는 자꾸 아이가 프랑스어를 알아들었다고 믿고 싶다.

 

 

 

 

 

 

 

 

디에프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2차 대전 때 독일이 점령한 디에프에 캐나다군과 영국군이 해안으로 침투했다.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디에프의 높은 절벽은 방어에 유리했고, 해변의 자갈은 연합군 전차의 발목을 잡았다.  캐나다군의 피해가 특히 심했는데 4963명 중에서 2210명만이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해변에서 하루 만에 2천명이 넘게 사망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아이들과 해변 한쪽에 있는 작은 추모 공원에 갔다. 위령탑에 “nous nous souvenons 우리는 기억합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기억을 한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고통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기억이 필요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다. 전사자, 부상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고통, 전쟁의 진짜 얼굴을 기억해야 한다.

 

역사 교육은 여기 까지만 하고 23일 동안 신나게 놀았다. 작은 수족관이 있는 해양박물관에 가고, 해안 절벽을 볼 수 있는 유람선을 타고, 미니 골프를 치고 가리비도 사 먹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집에 오는 길에 역시나 조금밖에 못 놀았다고 눈물을 흘렸다.

 

 

"아빠. 우리가 잤던 방은 다른 사람의 여름 별장이라고 했지?"

"응 맞아. 여름 내내 와 있는 건 아니니까 안 쓰는 동안에 빌려주는 거야."

"그럼 우리도 그 사람처럼 노르망디에 집을 하나 사면 안 돼?"

"......그래...... 생각해보자."

 

회사에 돌아와서 동료들에게 아이가 한 말을 이야기했다. 동료가 그것 참 프랑스적인 생각이라며 좋아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Pourquoi pas? 안될 게 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