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행

알프스 스키 여행

커피대장 2022. 12. 4. 16:58

9월즈음 아이들 겨울방학에 맞춰 알프스 스키장 근처에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그런데 11월에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스키장 리프트 중단 조치가 내려졌다. 여행을 취소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딱히 다른데 갈 곳도 없었다. 그냥 가서 아이들 눈구경이라도 실컷 시켜 주기로 했다.

출발 전에 스키복, 장갑, 눈에서 신을 수 있는 부츠 등을 준비했다. 눈길에 대비해 스노우 체인을 사고 감는 연습도 했다. 레스토랑도 전부 문을 닫았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해먹을 것도 준비했다. 아이들 장난감과 책까지, 작은 차에 좌석 밑까지 꽉꽉 채워서 겨우 실어서 출발했다.

집에서 스키장까지는 650km 거리로 어른들끼리 가면 한두 번 쉬고 7시간이면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멀미가 심해 한두시간마다 한 번씩 쉬어야 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스키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졌다.

숙소를 1km 앞두고 길이 너무 미끄러워 스노우 체인을 감았다. 집에서 체인을 감는 연습을 했지만 춥고 눈 내리고 어두운 실전 상황에서는 잘 되지 않았다. 힘들게 감고 출발했는데 제대로 묶이지 않았는지 올라가는 길에 풀려버렸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다시 체인을 감다가 지나가던 경찰에게 여기 차를 세우면 위험하다고 혼났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체인을 다시 감고 출발했다. 그런데 호텔을 찾을 수가 없었다. 주소 주변을 몇 번을 돌아도 호텔이 안보였다.

다행히 조금 전에 만난 경찰 아저씨를 다시 만나서 길을 물어봤다. 아저씨는 호텔에 전화해서 위치를 확인한 후 호텔까지 우리를 에스코트 해주셨다. 아빠는 부끄러운데 아이들은 경찰차가 우리를 보호해준다고 신이 났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눈놀이를 하러 나갔다. 호텔 앞 주차장에 허리 높이까지 눈이 쌓여 있었다.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 본다. 겨울왕국 같았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고드름을 땄다. 호텔 현관에는 작은 이글루도 만들었다.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매일 눈이 왔다. 눈이 오지 않을 때는 스키 슬로프에 가서 눈썰매를 탔다. 리프트 운영이 중단되어 텅 빈 슬로프를 눈썰매를 타는 사람들이 차지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신나게 슬로프를 질주했다.

 



 



스키를 들고 걸어서 슬로프를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다.' 감탄하고 있는데 윤수가 자기도 스키를 타보고 싶다고 했다.

"리프트가 멈춰서 스키를 들고 걸어서 올라 가야 해. 아빠는 아빠 스키를 들어야 하니까 윤수 스키는 들어줄 수 없어. 혼자 들고 올라갈 수 있어?"
"당연하지! 할 수 있어."

아이가 결연한 의지를 보여서 타보기로 했다. 스키보다는 스노보드에 더 자신이 있어서 스노보드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 스노보드를 하나씩 빌려서 슬로프를 걸어 올라갔다.

스노보드를 처음 탈 때 많이 넘어진 기억이 있어서 아이에게 처음에는 쉽지 않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막상 태워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이는 금방 적응해서 슬로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잘 넘어지지도 않았고, 눈이 많아 너어져도 안 아팠다.

윤수는 보드를 배운 다음날부터 아침마다 보드를 타러 가자고 졸라 댔다. 슬로프를 걸어 올라가는 것이 힘들지도 않은 지 하루 종일 오르내렸다. 나도 처음 보드를 탔을 때의 흥분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이가 원하는 만큼 같이 타줬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나 혼자 보드를 들고 산 위에 올라갔다. 슬로프 끝까지 올라가는 것이 목표였으나 매번 그 전에 포기하고 내려왔다. 더 높이 올라가면 다리가 아파서 제대로 내려올 수가 없었다. 속도는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푹신하게 쌓인 눈을 가르며 내려오는 느낌이 좋았다.

일주일이 정말 금방 지나갔다. 맨날 눈만 보는 것은 지겨울 것 같아 근처 당일치기 여행지들을 검색해 두었으나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귀찮은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산 위에서의 일과가 전혀 지겹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똑같이 놀고먹는 일상인데도 즐거웠다.

리프트가 운영 되었다면 사람이 많이 모일 것이 걱정되어 여행을 취소했을 것이다. 코로나 백신이 나오기 전이고 사망률도 높을 때였다. 스노보드를 제대로 타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마음 편하게 푹 놀고 쉬었다. 내년에 다시 오면 그 때는 윤수와 슬로프를 신나게 내려올 수 있겠지.

 



집에 오는 길에 부흐제 호수에 들렸다. 면적이 45km2으로 프랑스에서 첫 번째 또는 두 번째로 큰 호수라고 한다. (계절에 따라 순위가 바뀐다) 호수 바닥이 다 보일만큼 물이 깨끗했다. 지수가 호수에서 낚시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겨울이라 낚시를 할 수 없다고 알려주었지만 사실은 내가 낚시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낚시가 잔인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물고기에게 성대가 있었다면, 그래서 바늘에 꿰어서 끌려올 때 물고기가 비명을 지른다면, 그래도 사람들이 낚시를 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동물 복지에 대해 이야기할까 하다가 말았다. 아직은 아빠의 말이 진리인 시기라 내 말을 들으면 낚시를 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 내가 싫어한다고 해서 아이도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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