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여러분. 우리는 지금 피레네를 넘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세비야로 향하는 비행기. 창 밖으로 눈 덮인 피레네 산맥이 보였다. 산맥 너머 스페인 쪽은 프랑스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세비야의 공기는 파리와 완전히 달랐다. 기온 차이는 10도 정도인데 체감 상으로는 그것보다 훨씬 더 따듯하게 느껴진다. 아내에게 햇살의 품질이 완전히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남쪽으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2시가 조금 넘어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우리에게는 늦은 점심이지만 스페인에서는 보통 점심 먹는 시간이다. 세비야 대성당 앞 타파스 식당들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빈자리가 있는 식당을 겨우 찾아들어가 타파스 몇 개를 주문했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먼저 나온 빵부터 먹기 시작했다.
“아빠 이거 빵이 맛이 없어 푸석푸석해”
다 가질 수는 없는 거다. 온몸을 기분 좋게 감싸주는 따듯한 햇살이 있으니 빵은 포기하자. 오징어튀김, 크로켓, 새우 등 스페인에 오면 먹어야 할 타파스들을 먹었다.
세시 반에 알카사르 입장을 예약해놓아서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알카사르 Al Cazar는 712년에 무어인들이 지은 요새이다. 500여 년 뒤 스페인 사람들이 세비야를 다시 탈환한 뒤 궁전으로 개조하였다.
아이들이 정원에 가고 싶어 해서 정원을 먼저 둘러봤다. 알카사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렌지 나무다. 오렌지 나무에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바닥에 떨어진 것들도 많았다. 아이들은 예쁜 오렌지를 열심히 주우러 다녔다.
알카사르는 스페인 왕의 궁전으로 개조되었지만 아랍 양식이 많이 남아있었다. 화려한 타일 장식, 벽과 기둥에 조각된 기하학무늬, 궁전 안뜰은 전형적인 이슬람 건축물의 모습이었다.
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해서 살바도르 성당 앞 광장에서 추로스를 먹었다. 본토의 추로스는 크고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웠다. 중국의 요우티아오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포장지에 중국어로 요우티아오라고 적혀있었다.
아내가 광장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아이들과 알카자르에서 주운 오렌지로 축구를 했다. 세 번째 오렌지 공이 거의 다 터질 때쯤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축구공을 들고 와서 프랑스어로 말했다.
“나는 더 큰 공이 있어요”
“같이 놀래?” 그렇게 축구공과 선수 한 명을 영입하고, 프랑스 아이의 아빠가 이어서 합류했다. 그리고 옆에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스페인 꼬마도 끼워줬다. 윤수는 동네에서 연습한 트릭을 보고 꼬마 동생들이 감탄하자 기분이 좋아져서 신나게 뛰었다.
호텔에 돌아와서 아이들은 스타워즈를 보고 아내는 그림을 그렸다. 그동안 나는 잠깐 동네 골목길 산책을 했다. 좁은 골목에 타파스 식당은 테이블을 내어놓았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때로는 자동차도 지나간다. 식당 바 위에 걸려있는 돼지 뒷다리나 세라믹 가게의 접시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호텔 근처 성당 문 밖으로 신부님 목소리가 새어 나와서 들어가 보니 마침 영어로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신부님이 주님은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저녁에는 이베리코 돼지고기 전문 식당 5J (Cinco Jotas)에 갔다. 이베리코 구이 세트와 햄 세트, 하몽 샐러드를 먹었다. 이베리코는 메디엄 정도로 익혀서 나왔는데 이게 돼지고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돼지고기는 완전히 익혀 먹어야 맛있다는 편견을 깨 주었다.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소고기보다 더 맛있는 돼지고기는 별로고,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고 한다. 이게 얼마나 먹기 힘든 건지 모르고…….
식당 한쪽은 음료와 안주를 파는 바였다. 바 안에서 요리사가 하몽을 자르고 있었다. 뼈에 붙어있는 살까지 알뜰하게 잘라냈다. 윤수가 지나치게 감탄을 해서 요리사 기분이 좋아졌다.
실컷 먹고 와인까지 마셨는데 85유로 밖에 안 나왔다. 파리 외식 물가의 반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프랑스 사람들이 바캉스를 해외로 떠나는 이유를 알겠다. 우리도 스페인에 있는 동안 맛있는 것 많이 먹고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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