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여행 둘째날. 아침 일찍 스페인 광장에 갔다. 스페인 광장은 1929년 이베로-아메리카 박람회(Ibero-American Exposition)를 위해 지어졌다.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에게 스페인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광장은 당시 건축 기술을 총동원하여 웅장하고 화려하고 아름답게 지어졌다. 지금 내가 봐도 탄성이 나올 정도이니, 100년 전 남아메리카에서 온 사람은 정말 깜짝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광장이 너무 거대하다보니 사람들이 광장을 채우지 못해 휑한 느낌이다.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고, 중간에 만나서 이야기하고, 벤치에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는 곳이 좋은 광장이다. 이런 면에서는 실패한 건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광장에는 스페인의 각 도시의 역사가 그려진 타일로 꾸민 벤치가 있었다. 스페인 역사를 조금 공부하고 왔다면 도시마다 어떠 역사를 담았는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다음으로 산타크루즈 지구에 갔다. 하얗게 회반죽을 칠한 집들 사이로 골목이 얽혀있고, 중간중간 오렌지나무가 있다. 세라믹 가게, 카페, 기념품 가게, 타파스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고 거리 한켠에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려서 파는 예술가들을 만날 수도 있다.
낭만적인 거리지만 역사적으로는 아픈 과거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 이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15세기 레콘키스타 운동때 추방되었다고 한다. 당시 스페인 왕국이 유대인을 추방하는 과정이 신사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타크루즈 지구 바로 옆에 세비야 대성당이 있다. 유럽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이다. 황금으로 치장한 중앙 제단, 대형 파이프 오르간, 고야의 그림, 콜럼버스의 관 등 볼거리가 많았다. 그런데 거대한 성당 내부를 너무 많은 것들이 채우고 있어서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고딕 성당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중앙 제단을 향하는데, 세비야 대성당은 시선이 계속 분산되었다. 관광객이 많은 탓도 있었다.
세비야 대성당은 모스크를 허물고 그 위에 지어졌다. 하지만 과거의 흔적도 많이 남아 있는데 성당보다 더 눈에 띄는 히랄다 Giralda 탑이 대표적이다. 미나레를 그대로 활용하고 그 위에 종루를 추가해서 아래는 이슬람 양식, 위는 기독교 양식의 독특한 건물이 되었다. 성당 내부의 이슬람식 정원도 유럽의 다른 고딕 성당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성당을 보고 히랄타 탑 위에 올라가려고 했는데 아이들의 체력이 고갈되어 포기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빠에야 맛집을 찾아가서 생선 튀김과 해산물 빠에야, 그리고 지수가 좋아하는 생선 Sole 구이를 시켰다. sole 은 프랑스에서 자주 먹는데 실패하는 법이 없다. 생선튀김도 좋고 빠에야에는 소문대로 해물이 듬뿍 들어 있어서 맛있었다.
호텔에 돌아와서 오후 내내 쉬었다가 저녁 늦게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 시간이 스페인 기준으로는 저녁 전 시간이지만, 한국인에게는 저녁시간이라 좀 애매했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칭얼댈 것 같아 추러스를 먹고 가기로 했다. 구글맵에 추러스 맛집으로 표시된 곳을 찾아갔다.
스페인에서는 튀겨놓은 추러스를 파는 것이 아니라, 주문을 받으면 바로 튀겨서 내준다. 그 동안 추러스라고 알고 먹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이 집 추러스는 스페인에서 먹어본 것 중 가장 폭신폭신하고 맛있었다. 같이 나온 초컬릿도 잘어울려서 한접시가 금방 사라졌다.





세비야에는 플라멩코 공연을 하는 곳이 많았다. 우리는 플라멩코 박물관에서 하는 공연을 봤다. 공연 티켓값에 4유로를 더하면 박물관도 볼 수 있었다. 박물관에는 유명 무용수들의 영상을 소개하는 상영관과 플라멩코 복장, 신발 등을 전시하는 전시실이 있었고 그리고 플라멩코 관련 그림과 조각도 있었다. 작은 규모라 공연 전에 잠깐 둘러보기 좋았다.
공연은 노래, 춤, 분위기 모두 좋았다. 작은 공연장에 무대 바로 앞에 앉아서 무용수의 숨소리까지 들렸다. 한시간 남짓 예술가들의 열정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하루종일 너무 돌아다녀서 피곤했는지 공연 중간에 잠들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다음 목적지 말라가로 떠나기 전에 메트로폴 파라솔에 들렸다. 2011년에 지어진 건물로 버섯을 닮아 '버섯들 Las Setas'라고 부른다고 한다. 버섯 위 전망대에서 보는 세비야의 일몰이 아름답다고 하나, 시간이 맞지 않기도 하고, 일몰 시간에는 낮보다 입장료를 4배나 더 받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오전에 갔다.
전망대에 오르니 모든 방향으로 시야가 다 트여 있었다. 세비야의 전망도 멋지지만, 독특한 건물 구조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도심의 낙후된 지역을 재개발하던 도중 로마유적지가 나왔고, 유적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건물을 세우기 위해 기둥에 벌집 구조를 올리고 이를 서로 연결하였다. 역사, 도시계획, 과학, 예술이 협동하여 만든 좋은 프로젝트다.


'유럽여행 > 스페인, 포르투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안달루시아 - 그라나다 (0) | 2022.12.25 |
---|---|
스페인 안달루시아 - 말라가 (0) | 2022.12.25 |
스페인 안달루시아 - 세비야 1 (0) | 2022.12.19 |
포르투갈 포르투 3 (0) | 2022.12.17 |
포르투갈 포르투 2 (0) | 2022.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