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파리에 혼자 살던 시절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갔었다. 반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작은 마을이다. 마을 뒤로 올라가면 그가 <까마귀 나는 밀밭>을 그린 밀밭이 있다. 나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밀밭을 봤는데, 회색 구름 아래 거대하게 펼쳐진 노란 물결에 완전히 빨려 들었다. 그 후로 일 년 동안 프랑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더 큰 밀밭을 수도 없이 많이 봤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다.
그래서 올해 가족과 다시 가봤다. 노르망디 여행을 가는 길에 들릴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밀이 노랗게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황금 들판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마을에 도착. 입구에 차를 세우고 바로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밀밭이 있어야 할 곳에 옥수수가 있다. 길은 잘못 기억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일단 반고흐의 무덤이 있는 묘지에 먼저 갔다. 누군가 들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무덤 위에 올려놓았다.
묘지에서 나와보니 이제 확실해졌다. 까마귀 나는 밀밭에 올해는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다. 옥수수뿐만 아니라 양파도 있고 콩도 있었다. 까마귀 나는 양파 밭은 이름도 그렇게 멋지지 않고, 보기에도 그렇게 멋지지 않았다. 다음에는 그 해 무슨 작물을 심었는지 확인하고 다시 가봐야겠다.
아이들은 풍경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무근 밭이던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땅 위에 살짝 올라온 양파를 보고 재미있어했다. 여기저기 야생동물 발자국도 있어서 열심히 찾아다녔다. 밀알도 까보고 콩깍지도 까보고 자연 공부 열심히 했다.
언덕에서 내려와 반고흐의 그림에 등장한 오베르 교회를 보러 갔다. 교회 앞에서 아이들에게 반고흐가 그린 그림을 보여줬다. 분명히 같은 교회인데 느낌이 완전 다른 것이 아이들도 신기한 것 같았다. 내친김에 또 다른 그림에 나온 시청에도 가봤다.
아이들이 바게트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고 해서 시청 앞에 앉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빵집에서 바게트를 사고 바로 옆 마트에서 버터, 햄, 치즈를 샀다. 바게트를 잘라 버터를 바르고 햄과 치즈를 넣으면 끝. 별 것 없지만 맛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는 우아즈 강이 흐른다. (마을 이름을 번역하면 ‘우아즈 강에 있는 오베르’라는 뜻이다). 집에 가기 전에 강변에 들러서 산책을 했다. 마침 해가 나서 강물이 반짝반짝 빛났다. 강물에 돌을 던지고 놀고 잔디밭에서 축구도 했다. 요즘 윤수는 축구에 빠져서 작은 골대와 축구공을 가지고 다닌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은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반고흐 아저씨처럼 보이는 것이랑 다른 느낌으로 그려보겠다고 한다. 윤수는 반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따라 그리고 지수는 우아르강에서 본 물고기를 그렸다. 황금들판은 비록 못 봤지만 그래도 다녀온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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