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파리와 근교 40

프랑스 요리는 어떻게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을까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 뭐가 가장 그리울 것 같냐는 동료의 질문에 ‘프랑스 요리’라고 대답했다. 나는 맛있는 음식에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주는대로 먹고 찾아 먹지 않는다. 평소에 먹고 싶은 것도 별로 없어서 요리를 전담하는 아내가 힘들어한다. 회사 식당에서는 메뉴를 보지 않고 짧은 줄 뒤에 가서 선다. 그런데도 프랑스에서 좋은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왜 좋은지는 딱히 설명하기 힘들었는데, 유네스코에 프랑스 요리가 등재된 이유를 읽고는 이거다! 싶었다. - the use of fresh, preferably local products and complementary flavours - careful selection of dishes re..

파리의 역사를 간직한 파사주 Passage, 갤러리 비비안 Galerie Vivienne

두 아이가 모두 친구 집에서 슬립오버를 했다. 이런 기회를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아내와 파리 시내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우리는 레스토랑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일찍 직을 나와 산책을 했다. 팔레 후야얄을 걷고 갤러리 비비안 Galerie Vivienne에 갔다. 이곳은 파리의 대표적인 파사주 쿠베르 Passage couvert 중 하나다. Passage는 '통로' couvert는 '덮인'을 뜻한다. 그러니까 passage couvert는 덮인 통로라는 의미이다. 건물 사이의 좁은 보행자 통로 위에 유리 천장을 덮어놓은 구조다. 통로 양쪽에는 상점들이 있으니 옛날 아케이드라고 볼 수 있다. 낮에는 골동품, 책,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들이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우리가 갔던 늦은 시간에는 상점들이 모두 문을 ..

파리 필하모니 Philharmonie de Paris

한 달에 두 번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파리에 와서 새로 생긴 취미다. 라디오프랑스에도 가끔 가지만 홈그라운드는 파리 필하모니다. 파리필하모니의 피에르 불레즈 홀은 내가 가본 공연장 중에서 가장 음향이 좋은 곳이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시야가 가리지 않고 무대가 잘 보이는 것도 이 홀의 장점이다. 차를 가져와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면 바로 공연장으로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일부러 건물 밖으로 나간다. 입구에서 아름다운 건물을 향해 걸어가는 것부터 이미 공연 감상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들뜬 사람들을 따라 공연장 안으로 들어간다. 차가운 느낌을 주는 금속 재질의 외부와는 달리 공연장 내부는 부드럽고 따듯한 느낌이다. 친구들과 온 사람들은 바에서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 온 사람들은 CD..

생클루 공원 Domaine National de Saint-Cloud

단풍철이 찾아왔다. 원래 계획은 부르고뉴로 포도밭 단풍을 보러 가는 것이었지만, 가족들 모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취소했다. 대신 가까운 생클루 공원으로 소풍을 다녀왔다. 생클루 공원은 황제들이 머물렀던 성이 있던 자리다. 비록 성은 1870년 프로이센 전쟁 중에 파괴되었지만, 성터와 정원, 숲은 여전히 남아 파리 시민들에게 쉼터가 되고 있다. 파리에서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어 가족들과 주말에 자주 찾는다. 공원 입장료는 없지만, 차를 가지고 들어가려면 7유로를 내야 한다. 파리의 주차료를 생각하면 7유로는 공짜나 다름없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나뭇가지 숲'은 공원 안쪽까지 들어가야 해서 항상 차를 가지고 간다.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하고, 숲에서 나뭇가지를 모아 나무집을 만들고, 지겨워지면 숲..

지베르니 Giverny

올 여름 지베르니에 갔다가 기념품샵에서 '지베르니의 사계절' 사진책을 본 아내가 말했다. "여기 매 계절마다 왔어야 했는데!" 사진 속 지베르니는 계절마다 다른 모습이었다. 봄에는 튤립이 피고 등나무 꽃이 일본식 다리 주변을 덮는다. 여름에는 가장 많은 꽃이 피어서 화려하고, 가을에는 정원이 금빛과 붉은색으로 물든다. 겨울에는 잠들어 있는 듯한 연못 위로 눈이 덮여 있었다.  그래서 가을의 지베르니를 다시 찾아갔다. 모네의 집을 덮은 담쟁이 덩굴은 붉게 변했고, 연못 주변의 나무에도 단풍이 들었다. 정원에는 여름에 왔을 때 피어있던 꽃들은 모두 지고, 대신 보라색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가을 꽃은 여름 꽃보다는 작고 수수했지만 단풍과 잘 어울렸다.  정원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지베르니 인상주의 미술..

루브르 박물관 Sully관 308호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항상 이란의 유물이 전시된 SULLY관 308호를 찾는다. 내가 지금까지 여행을 가본 나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이란이다.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에 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설렌다. 루브르의 이란 전시실에 들어서면 이란 여행의 추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 이곳에는 이란의 고대 도시 수사에서 가져온 유물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수사는 기원전 4천년 엘람인들이 건설한 도시다.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 제국의 황금기를 통치한 다리우스 1세가 이곳에 거대한 궁전을 건설하였다. 하지만 페르시아 제국은 겨우 2세기 밖에 가지 못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당한다. 그 후 수사 궁전은 파괴되고 잊혀져 사막의 모래 속에 묻힌다. ​ 궁전은 천년이 넘게 흐른 뒤1884년부터..

미슐랭 레스토랑도 할인이 되나요? - Table Bruno Verjus

파리에 온 이후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아내와 함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다. 사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정통 서비스를 온전히 누리려면 저녁에 가야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저녁엔 갈 수가 없다. 게다가 보통 점심 메뉴가 저녁보다 훨씬 저렴해서, 단품 메뉴를 100유로 정도에 즐길 수 있다. 여전히 매우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미식의 도시에서 살고 있으니 1년에 한 번쯤은 사치를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합리화할 만한 수준이다. 결혼 11주년 기념일에는 Table Bruno Verjus를 예약했다. 해산물을 중심으로 한 모던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오픈 키친 구조라 셰프와 주방 팀이 요리하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어 흥미로울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레스토랑에 도착해 메뉴를 보고 당황했다. 메뉴판에..

파리 패럴림픽

내가 사는 도시에 올림픽이 열리는 행운이 찾아왔다. 올림픽 경기는 티켓 값이 너무 비싸서 몇 경기 못봤지만, 대신 패럴림픽 경기에 많이 찾아갔다. 올림픽 경기보다 훨씬 가격이 저렴한 것도 있지만, 패럴림픽 경기에 대한 궁금증도 컷고, 올림픽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파리 올림픽은 비용을 절감하고 탄소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새로운 경기장을 건설하지 않는 방침을 세웠다. 대신 시내 광장에 임시 경기장을 설치하거나, 대형 전시장을 경기장으로 개조해서 사용했다. 그래서 에펠탑 스타디움, 앵발라드 스타디움, 그랑팔레 스타디움 같은 멋진 경기장들이 탄생했다. 랜드마크 경기장들은 패럴림픽 기간에도 빈자리를 찾기 힘들만큼 많은 관중들이 찾았다.  패렬림픽 경기는 올림픽 경기와 분위기..

파리 소르본 대학 견학, 유럽 문화유산의 날

1년에 한번 있는 유럽 문화유산의 날에는 평소에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는 유적지나 공공기관, 역사적 건물이 무료로 공개된다. 엘리제궁이나 국회의사당 같은 주요 기관 뿐만 아니라 동네 시청까지 다양한 곳에 방문할 수 있다. 우리는 올해 소르본대학교에 가보았다. 먼저 Pierre and Marie Curie Campus 를 방문했다. 이곳은 캠퍼스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과학 학과들이 모여있는 캠퍼스다. 1970년대에 설립되어 고풍스러운 메인 캠퍼스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광물박물관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오후에나 문을 연다고 해서 대신 지질학과 도서관을 방문했다. 화산과 바다에 대한 책, 고지도를 구경하고 엽서와 책갈피를 선물로 받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게시판..

파리 근교 몽모헝시 숲 - Forêt de Montmorency

일요일. 점심을 먹고 귀찮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차에 태워서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몽모헝시 숲 Forêt de Montmorency에 갔다. 날씨가 좋아 나들이 온 사람들이 많았다. 중세 시대에 지어진 작은 성, Château De La Chasse 앞 잔디밭에는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이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성을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 나무 사이로 바스럭거리는 소리가 자꾸 나서 긴장했는데, 알고 보니 밤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밤 껍데기를 까보니 동글동글 작고 귀여운 알밤이 들어있었다. 아이들에게 발로 밤송이를 까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숲을 돌아 다니며 정신없이 밤을 주웠다. 제일 크고 잘 생긴 밤 몇 개를 골라 가방에 넣고 나머지는 다시 숲에 던져놓았다. 야생 동물이 있을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