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키루나로 이동했다. 오로라를 볼 확률을 높이려면 북위 66° 33 이북 지방의 북극권에 가야 한다. 노르웨이의 트롬쇠, 핀란드의 로바니에미, 스웨덴의 키루나가 북극권에 있는 대표적인 도시다. 세 도시 중에서 고민하다가 파리에서 이동하기 편리하고 무엇보다 물가가 가장 싼 키루나로 결정했다.
키루나 공항에 가까워지자 비행기 창 밖으로 눈 세상이 펼쳐졌다. 울창한 침엽수림에 눈이 덮여 있고 드문드문 오두막이 보였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비행기에서 본 숲 사이를 달려서 Jukkasjärvi 마을의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짐을 맡겨놓고 맞은 편의 Nutti Sami siida 에 갔다. 소수 민족인 사미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야외 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사미인들이 야영을 했던 텐트, 예술 작품들, 사미인들의 생활 모습을 찍은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에서는 순록을 키우고 있는데, 먹이를 구입해서 순록에게 줄 수 있다. 순록들은 먹이가 있는 것을 귀신같이 알고 달려들어서 아이들이 무서워했다. 하지만 먹이가 떨어지면 가차없이 돌아선다.
점심을 먹으러 박물관의 레스토랑에 갔다. 대형 나무 오두막 가운데 모닥불을 피워놓고 주변에 테이블을 놓았다. 워낙 추운데 있다 들어오니 불 옆에 서있어도 한기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주문을 할 때도 떨고 있었는지 직원이 물었다.
"추워요?"
"네! 추워요! 얼겠어요!"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은걸요!"
직원의 대답에 옆에 있던 사람들 모두 다 같이 웃었다. 순록 고기가 들어간 햄버거와 따듯한 야채 수프를 먹었다. 방금 순록에게 먹이를 주고 와서 순록 고기를 먹는 것이 좀 그랬지만, 맛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눈놀이를 하러 나갔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로라를 보고 눈 구경을 하는 것이라 키루나에서 좀 떨어진 호숫가 한적한 마을에 숙소를 잡았다. 키루나 시내의 호텔에서 지내는 것보다 아이들을 눈에서 놀리기 편하고, 인공광이 적어 오로라를 볼 확률도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숙소 바로 앞의 호수에 눈이 아이들 허리 높이까지 덮여 있었다. 아이들은 눈을 던지고, 먹고, 쌓고, 그 위에 구르면서 신나게 놀았다.
숙소 벽난로에 장작불을 피워서 몸을 좀 녹이고 동네 슈퍼에 저녁먹을 거리를 사러 갔다. 숙소 주인아저씨가 동네 왔다 갔다 할 때 쓰라고 썰매 두 대를 꺼내주셨다. 썰매를 타고 장 보러 가다니. 북극 지방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저녁을 먹은 뒤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오로라 예보에 의하면 이 날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은 높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Jukkasjärvi에 머무는 기간 내내 흐린 날씨가 예보되어 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수시로 마당에 나가 오로라가 혹시 있는지 찾아봤다.
다섯번쯤 나갔을까 마당에서 숙소 주인아저씨를 만났다.
"그쪽이 아니라 저쪽에서 오로라가 올라올거에요. 지금 살짝 희미하게 보이네요."
"어디요? 저는 안보여요."
"휴대전화 카메라로 보면 더 잘 보여요."
"앗 정말 있네요. 이제 보여요!"
"오늘은 오로라가 약할 것 같아요. 그래도 한 시간 정도는 볼 수 있을 거예요. 여기는 가로등 때문에 잘 안 보일 수 있으니 호수에 나가봐요"
다 같이 호수에 갔다. 오로라는 점점 더 진해져서 이제 맨 눈으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서쪽 하늘에서 점점 올라와서 동쪽까지 이어졌다. 사진으로 봤던 진한 초록색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히 오로라였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추위에 떨어서 피곤했는지 오로라를 보고도 시큰둥했다. 숙소에 들어가고 싶어 해서 재워놓고 아내와 다시 호수로 나왔다. 빛이 마을 뒤로 흘러내리는 광경이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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