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에서 피렌체로 이동하는 날. 제노바 기차역 앞 카페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카페 이름이 원소 기호 4개 - Ca, F, He, In - 를 이용해서 카페인 CaFHeIn이었다. 화학 전공자가 개업한 카페임이 분명하다.
화학 전공자는 커피도 잘 만든다. 이탈리아에서는 에스프레소가 가장 훌륭한 커피이지만, 아침에는 카푸치노를 한 잔 마시는 것도 괜찮다. 모양도, 맛도, 향도 훌륭한 100점짜리 카푸치노였다.
제노바에서 피렌체로 가는 길에 피사에 들렀다. 피사의 사탑 하나 보기 위해 들릴 가치가 있나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기차가 지나가는 길이니 들러보기로 했다.
피사역 짐 보관소에 가방을 맡기고 피사의 사탑으로 향했다. 사탑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들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유명한 건물이 눈앞에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아내가 여행 전 아이들과 탑의 건축 과정과 기울게 된 원인에 대해서 예습을 해서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 엔지니어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어. 기초를 잘 다지지 않아서 탑이 기울게 된거야. 하지만 그 덕분에 관광자원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 사탑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복원 엔지니어들은 반대로 일을 너무 잘해서 사탑을 똑바로 세울 뻔했어. 그런데 사탑이 똑바로 서게 되면 아무도 보러 오지 않을까 봐 4도에서 멈추기로 했대.
- 피사의 사탑은 기울어져서 '사'탑이라고 불러. 그런데 만약 똑바로 세웠다면 더 이상 '사'탑이 아니잖아? 그럼 이름을 바꿔야 할까? 아니면 그래도 피사의 사탑일까? 처음에는 똑바로 서있었을 텐데... 그럼 다른 이름이었을까? 몇 도 기울어지면 그때부터 사탑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에펠탑은 정말 90.00000000도로 서있을까?
각도기 앱을 다운받아 탑이 4도 기운 것을 확인하고, 피사의 사탑 공식 포즈로 인증 사진을 찍었다.
점심은 피사 시내의 토스카나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피사와 피렌체는 토스카나 지방에 속한다. 토스카나 대표 요리인 멧돼지 요리와 곱창 요리, 그리고 토스카나식 소고기 요리를 먹었다.
계산을 하면서 담당 서버에게 곱창이 정말 맛있었다고, 한국에서도 곱창을 먹는데 비슷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담당 서버는 반가워하며 피렌체에 가면 곱창버거 람프레도또 Lampredotto 꼭 먹어보라고 이야기했다. 메모지에 이름을 적어주었는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피렌체에서 람프레도또 가게는 한국에서 김밥집만큼 많이 보였다. 그리고 맛있었다!
근처 에스프레소 바에서 커피를 마시고 피사에서 젤라토가 가장 맛있다는 가게를 찾아갔다. 젤라토를 하나씩 사서 아르노 강을 바라보며 먹었다. 이 집은 피스타치오와 헤이즐넛 젤라토가 훌륭했다.
피사역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했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조토의 종탑에 올라갔다. 해 질 무렵이라고 생각한 시간에 예약을 했는데, 서머타임이 끝나는 걸 생각 못했다. 피렌체 가기 직전에 시간이 바뀌어서, 예약한 시간은 밤이 되었다. 덕분에 피렌체 야경을 봤다.
조토의 종탑만 올라가는 Giotto Pass 와 돔에도 올라갈 수 있는 Brunelleschi Pass 중에서 고민하다 아이들이 둘 다 오르기는 힘들 것 같아서 Giotto Pass만예약했다. 그런데 웬걸, 어린이들은 종탑 끝까지 한 번도 안 쉬고 올라갔다. 헉헉거리며 겨우 따라 올라가니 이제 다 봤다고 내려가자고....
아이들이 돔에도 올라가 보고싶다고 했으나 우리가 머무는 일정 내내 매진이었다. 다음에 여자친구랑 같이 올라가 보거라.
구시가지 구경을 하고 저녁으로 티본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 지인들에게 피렌체에 간다고 이야기를 하면 한국 사람, 프랑스 사람 할 것 없이 티본스테이크를 먹으라고 이야기했다. 열심히 공부한 끝에 Guelfa라는 식당을 예약했다.
티본스테이크를 주문하니 서버가 "미디엄 레어를 추천하는데 괜찮아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이건 질문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했고, 정말 맛있었다. 유명할만하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먹어본 적이 없는 스테이크였다.
브루넬로 와인과 트러플 파스타, 후식으로 먹은 티라미수, 파나코타, 토스카나 파이까지 모두 훌륭했다. 레스토랑을 나오며 지수가 담당 서버에게 엄지를 치켜올리며 방금 배운 이탈리아어 "Perfetto!" 를 외쳤다. 식당 직원들과 손님들도 모두 다 같이 웃었다. 정말 완벽한 저녁 식사였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는 내 휴대폰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아내가 길잡이를 했다. 그런데 아내에게 호텔 주소를 잘못 알려줘서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걸었다. 덕분에 저녁 식사의 여운을 즐기며 피렌체 야경 구경도 할 수 있었다. 두오모와 넵튠 분수를 보고 가방을 파는 노점상도 구경했다.
호텔은 레스토랑 근처에 있었다. 어린이들은 힘들었다고 불평을 했지만 이것도 다 추억이다. 피렌체 이야기가 나오면 "그 때 아빠가 이상하게 알려줘서......" 라고 두고두고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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