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쿠사에서 버스를 타고 카타니아로 이동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카타니아의 중심가, 에트네아 거리 Via Etnea 를 산책했다. 에트네아 거리에서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에트나 화산이 보인다. 화산은 카타니아에서 35km 떨어져 있지만 그 크기 때문에 도시 바로 뒤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발고도 3323m로 유럽에서 가장 큰 에트나 화산은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역사에 처음 기록된 기원전 264년 포에니 전쟁 이후로 200여 차례 폭발했다. 1669년 대폭발 때는 카타니아까지 용암이 흘러내렸고 2만 명이 사망했다. 최근에는 2021년, 2022년, 2023년 3년 연속으로 용암을 분출했다. 수증기를 24시간 내뿜는 화산 아래 도시에 머무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에트나 화산 투어를 했다. 아이들과 활화산에 간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기도 하고, 화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기도 해서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우리 가족과 밀라노에서 온 이탈리아인 4명이 한 팀이었다. 가이드의 밴을 타고 다 같이 화산으로 출발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용암석을 채취하는 채석장에 들렀다. 용암석은 가볍고 단단하기 때문에 건축 재료로 많이 사용된다. 도로를 포장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고 건물을 짓는데도 쓰였다. 그래서 카타니아는 도시 외관이 잿빛을 띤다.
산 중턱에 주차를 하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트레킹 코스는 2시간짜리 짧은 코스부터 분화구까지 올라가는 종일 투어까지 다양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있으니 가장 짧은 코스를 선택했다. 가이드가 산을 오르며 화산의 지질학적 특성, 화산에 사는 생물들, 화산 분출의 역사까지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에트나 화산은 여러 차례 분출을 했고 매번 분출된 용암의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용암석의 모양도 달랐다. 산화가 많이 된 부분은 붉은색을 띠어서 화성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최근에 분출된 것은 짙은 검은색이었다. 1992년 때 분출 때 만들어진 분화구에는 용암이 흘러내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92년 분출 때 흘러내린 용암은 아직도 다 식지 않았다. 작년에 화산학자들이 땅속 온도 측정을 했는데 가장 아래 부분의 온도가 80도였다고 한다. 산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바위들은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준다.
에트나 화산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3에서 아나킨과 오비완의 화산 결투신을 촬영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촬영팀은 2002년 화산 분출 때 방문하여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도 촬영해 이를 영화에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스타파 행성에 있는 거예요!" 가이드의 설명에 우리 집 스타워즈 팬 어린이들이 격하게 반응해서 가이드가 행복해했다.
우리는 운 좋게 반지 구름도 관찰했다. 분화구에서 선명한 반지 모양의 구름이 이따금씩 나왔는데, 다른 화산에서는 보기 힘들고 에트나에서 아주 가끔씩만 볼 수 있는 희귀한 현상이라고 한다. 가이드가 화산 가스가 원형의 분화구를 빠르게 통과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산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바다가 보였다. 날씨가 좋아서 멀리 시라쿠사 해안까지 볼 수 있었다.
투어에는 용암 동굴 방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용암 동굴은 용암이 흐를 때 표면은 먼저 식어서 굳지만 내부의 굳지 않은 뜨거운 용암은 계속 흘러내리면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생긴다. 침식에 의해 생긴 동굴과는 달리 단순한 튜브 모양이고, 벽면에 용암이 흐르면서 만든 스클래치와 가스 분출 구멍이 있다.
용암 동굴은 주로 지진에 의해 입구가 발견되는데, 우리가 방문한 동굴은 1960년대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가이드가 준비해 온 안전모를 쓰고 랜턴을 하나씩 들고 동굴에 들어갔다. 높이가 아이들 키만 하고 폭은 10m 정도 크기의 동굴이었다.
동굴 내부는 외부보다 온도가 많이 낮았다. 이 때문에 과거 카타니아는 얼음 수출을 많이 했다고 한다. 겨울에 내린 눈을 동굴에 쌓아두었다가 여름에 꺼내 이탈리아 다른 지역과 중동 지역까지 수출을 했다. 아랍의 왕들이 셔버트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100m도 되지 않는 짧은 동굴이었지만 아이들은 처음 해보는 동굴 탐험에 눈이 반짝였다. 가이드가 동굴 벽에 매달려있는 작은 박쥐를 한 마리 발견해 아이들을 더 기쁘게 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화산 동굴에서 야생 박쥐를 본걸 자랑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에트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꿀과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투어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양봉원에 들렀다. 오렌지 꿀, 레몬 꿀 등 다양한 꿀을 시식하고 올리브 오일과 올리브도 맛봤다. 와인은 깔끔하면서도 마냥 가볍지 않아 마음에 들었는데 기념품으로 사 오기에는 비싼 편이었다. 대신 꿀과 올리브를 샀다.
다음 목적지 타오르미나로 이동했다. 타오르미나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예쁜 도시로 꼽히고, 그래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이 많으니 물가도 비싸서 숙박비가 카타니아에 비해 2배는 되었다. 숙박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당일치기로 다녀올까 고민을 했는데, 마침 에트나 투어에 포함하는 옵션이 있었다.
가이드는 우리를 마을 입구 주차장에 내려주었다. 2시간 반 가량 자유시간을 보내고 다시 만나 카타니아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2시간 반은 점심을 먹고 그리스 극장에 다녀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움베토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노르마 파스타 Pasta alla Norma를 먹었다. Norma는 시칠리아의 위대한 작곡가 빈센초 벨리니의 오페라 작품 이름이다. 오페라 작품을 딴 파스타를 만들 만큼 이 나라 사람들은 오페라를 좋아한다. Norma 소스에는 시칠리아의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자란 토마토와 가지가 들어간다.
움베르토 거리에는 기념품 가게, 갤러리, 명품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관광객들에 거리를 가득 채웠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베르토 고리는 그리스 극장으로 이어진다. 타오르미나의 그리스 극장은 기원전 3세기에 지어졌다. 언덕 위에 건설되어 객석에 앉으면 하늘과 바다 사이에 걸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대 뒤로는 에트나 화산이 보인다. 그리스 비극을 연출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극장이 있을까.
극장의 한편에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볼 수 있는 전망대 카페가 있었다. 피스타치오 그라니타를 마시면서 더위를 식혔다. 아래 해변에는 예쁜 섬 Iosla Bella 가 보였다. 케이블카를 타면 내려갈 수 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다음을 기악 하며 눈에만 담아두었다.
투어를 마치고 카타니아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공사 때문에 시간이 예상보다 30분이 더 걸렸다. 가이드가 시칠리아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농담을 했다. 기차가 지연되거나 길이 아무 이유 없이 통제되는 일이 시칠리아에서는 너무 많다고.
“덕분에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했는걸요.”
가이드에게 남쪽의 낙천성을 담아 이야기하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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