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두 번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파리에 와서 새로 생긴 취미다. 라디오프랑스에도 가끔 가지만 홈그라운드는 파리 필하모니다. 파리필하모니의 피에르 불레즈 홀은 내가 가본 공연장 중에서 가장 음향이 좋은 곳이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시야가 가리지 않고 무대가 잘 보이는 것도 이 홀의 장점이다.
차를 가져와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면 바로 공연장으로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일부러 건물 밖으로 나간다. 입구에서 아름다운 건물을 향해 걸어가는 것부터 이미 공연 감상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들뜬 사람들을 따라 공연장 안으로 들어간다. 차가운 느낌을 주는 금속 재질의 외부와는 달리 공연장 내부는 부드럽고 따듯한 느낌이다. 친구들과 온 사람들은 바에서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 온 사람들은 CD 판매 부스를 기웃거린다.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찾아가 앉는다. 옆 자리 사람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프로그램북을 뒤적인다. 녹화나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조명이 어두워진다. 객석에는 긴장감과 기대감이 가득찬다.
지휘자의 신호에 맞춰 오케스트라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시작한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지금까지 수천번은 연주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들은 연주는 오늘 딱 한번만 존재한다. 리카르도 샤이와 루체른 페스티벌 오페라는 다른 도시에 가서 같은 곡을 또 연주하겠지만, 그 연주도 오늘의 연주와는 다르다.
100년도 더 전에 작곡된 곡이 반복해서 연주가 되지만 지금까지 매번 달랐고, 앞으로도 다를 것이라는 것이 공연장을 계속 찾게 되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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