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북서쪽 해안 지방을 프랑스어로는 브르타뉴 Bretagne, 영어로는 브리타니 Brittany라고 부른다. 바다가 만든 거친 풍경과 과거 오랜 세월 동안 프랑스와 분리되어 독립 왕국을 유지하면서 만들어진 지역적 색채가 매력적인 곳이다. 생말로는 브르타뉴 Bretagne 지방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항구도시다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바다로 나갔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도 많이 불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모래사장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지수는 바위에 붙은 따개비를 발견하고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손이 시릴 만큼 물이 찬 데도 한참을 놀았다. 집에 가자고 이야기를 해도 들리지도 않는 것 같다. 지수가 물에 빠져 옷이 완전히 젖는 바람에 겨우 호텔에 돌아올 수 있었다.
생말로에는 갈레트를 파는 식당이 너무 많아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호텔 바로 옆에만 두 곳이 있었다. 두 곳 모두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갈레트는 밀가루, 메밀, 우유로 만든 얇은 팬케이크 위에 햄, 해산물 같은 속재료를 넣은 음식이다. 모양만 봐서는 크레프와 비슷하다. 나중에 브르타뉴 사람에게 물어보니 다른 점을 열심히 설명을 했다. 갈레트에는 메밀이 들어가고, 조금 더 짭짤하고, 조금 더 두껍다. 크레프에는 잼이나 크림 같은 간단한 토핑을 '올리고', 갈레트에는 햄이나 새우 같이 배가 부를 수 있는 본격적인 속재료가 '들어간다'.
나는 햄치즈 갈레트, 아내는 연어 갈레트, 윤수는 버터설탕 갈레트, 지주는 초코 크레프를 먹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브르타뉴의 또 다른 명물인 사과주 시드르를 곁들여 마시고 있었다. 따듯하게 데워서 찻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 특이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또 해변에 갔다. 아이들은 오늘도 따개비를 잡고 돌을 던지면서 놀았다. 조개껍질을 줍고 모래사장에 그림도 그렸다. 찬바람이 불어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차가운 가을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단하다.
구시가지에 있는 생선요리 전문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전식부터 후식까지 2시간 동안 아이들이 잘 앉아있어 주었다. 윤수는 이제 제법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지수는 답답하면 손으로 집어서 먹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식을 하면 아이들 밥을 먹이느라 정신없었는데, 많이 컸다.
점심을 먹고 12세기부터 지어진 성벽 위를 걸었다. 성벽 안쪽에 있는 구시가지는 17세기 무렵 영국과 프랑스를 오고 가는 상선과 이들을 공격했던 해적들이 모이는 중요한 항구 도시였다고 한다. 지금도 17세기 거리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루앙과 마찬가지로 2차 대전 때 대부분 파괴되어 재건된 것이다.
성벽 밖으로는 멋진 요트들이 정박한 항구가 보인다. 프랑스 북부 해안의 항구도시에는 어디나 요트 선착장이 있었다. 그만큼 요트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노르망디에서 근무하는 회사 동료는 주말에 심심하면 배를 타고 영국에 갔다 온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멋지다.
구시가지를 구경하다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버터 중 하나인 보르디에 Bordier 버터 샵에 찾아갔다. Jean-Yves Bordier가 이곳 생말로에서 버터 사업을 처음 시작해 명품 버터로 키워냈다고 한다. 보통 볼 수 있은 가염 버터뿐만 아니라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간 버터도 팔고 있었다. 기념으로 버터와 치즈를 몇 가지 구매했다. 버터 샵이 있는 건물은 생말로 구시가지에서 2차 대전 때 파괴되지 않은 몇 안 되는 건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세월의 흔적이 많이 느껴졌다. 버터 샵 바로 옆에는 보르디에 버터를 활용한 요리를 파는 레스토랑도 같이 운영한다. 우리가 방문한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아서 가보지 못했다.
호텔에 돌아와서 쉬다가 해 질 무렵 석양을 보러 나갔다. 아이들은 쉬고 싶다고 해서 내가 먼저 나가서 보고 돌아와서 아내와 교대했다. 아내가 나갈 때 아이들에게 너무 멋진 풍경이라고 같이 나가자고 설득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몇 살이 되면 노을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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