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아르

친구와 루아르 여행 - 고성 숙박 Château de Cinq-Mars

커피대장 2022. 12. 6. 18:00

루아르 계곡 Val de Loire은 수많은 고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15세기부터 프랑스의 왕들이 이곳에 성을 지어 놓고 휴가를 보내거나 손님을 초대했다. 왕이 머무르는 곳에는 왕에게 잘 보이고 싶은 귀족들도 모이는 법이다. 귀족들 역시 이 곳에 혹시라도 왕이 방문해 주실 까 하는 희망을 품고 멋진 성을 지었다. 중세 때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300여개의 크고 작은 성이 지어졌다고 한다.

루아르 강을 따라 가며 성들을 방문하는 '샤또 투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행 코스다. 성을 방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곳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다. 루아르에는 성을 개조하여 만든 대규모 호텔부터 성의 주인이 거주하면서 방 몇 개를 빌려주는 작은 B&B까지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우리는 12세기에 지어진 Château de Cinq-Mars 라는 이름의 작은 성을 찾아갔다.
성의 주인이자 관리자인 길다 Gilda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길다는 남편과 함께 성에 살고 있었다. 손님용 방이 두 개 있어서 우리 가족과 같이 여행을 간 동료 가족이 각각 하나씩 썼다. 성의 가운데는 부부가 쓰는 식당 겸 사무실이 있고, 바로 옆에 길다의 남편인 루이폴이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이 있었다. 별채에는 손님이 쓸 수 있는 작은 주방이 있어서 간단한 요리를 해먹을 수 있었다.



우리가 여행을 간 시기에는 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박물관으로 운영되는 성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래서 숙소에만 있으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아이들은 성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다. 정원을 뛰어다니고, 나무에 묶어 놓은 그네를 타고, 곤충을 잡고, 게임을 하고, 돌무덤 위를 뛰어다녔다. 정원 가운데 세워진 두 개의 오래된 탑 안에 들어갈 때는 인디아나 존스라도 된 것처럼 탐험 도구를 챙겼다.

어른들도 하루에도 몇 번씩 정원을 산책했다. 새소리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꽃에 맺힌 이슬을 보고 루이폴이 정원 곳곳에 숨겨놓은 작은 그림들을 찾아봤다. 심호흡을 하면 숲의 냄새가 가슴을 채웠다.




매일 아침에는 벽난로에서 은은하게 장작불이 타오르는 식당에서 신선한 빵과 치즈가 있는 근사한 아침식사를 했다. 밥을 먹는 동안 노부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티타임을 하면서, 정원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서 길다와 많은 대화를 했다.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저기에 큰 밤나무가 있었 어. 그런데 몇 년 전에 큰 태풍이 있던 날 그 나무가 쓰러졌어. 나무가 없어진 자리가 얼마나 허전한지, 나무가 우리 정원을 지켜주고 있다는 걸 그때야 알게 되었 어. 가을이면 저 길이 밤으로 가득 찼는데 이제는 밤을 주울 수가 없어. 평생 함께한 오랜 친구가 갑자기 사라진 것과 똑같아."

"얼마 전에 새 연구가들이 우리 성에서 조사를 했어. 우리 성에 사는 새가 52 종류나 있다고 해. 나무가 많아서 새가 많은 거고, 새가 많아서 나무가 많은 거야. 새가 벌레를 잡아먹으니까. 아침에 먹을 것을 내놓으면 새들이 먹고 가. 내일은 너희 아이들이 볼 수 있게 우리가 아침을 먹은 다음에 새 모이를 줄까 해. 새들은 배가 고프겠지만 하루쯤 은 괜찮겠지."

"이 근처에 사과로 유명한 동네가 있어. 이 사과주스는 거기 사과로 만든 거야. 세 종류의 사과가 있는데 올해는 이게 제일 맛있어. 우리는 동네 야채와 채소만 사. 치즈도 동네에서 만든 게 제일 좋아. 빵은 윗마을에서 샀 어."

"한국에서도 빵을 프랑스와 똑같이 발음해요."

"그래? 정말 신기하지. 아마 스페인어로도 빵이지? 라틴어 어원사전을 한번 찾아볼까? 여기 한번 읽어봐. 프랑스어로 친구가 ‘꼬빵’이자나. 이 말도 빵에서 온 거야. Co-빵이니까 빵을 같이 먹는 사이가 친구인 거야."




루이폴은 아버지가 예술가였고, 본인도 예술가였다. 부자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전시장 겸 작업장은 미술관이 따로 없었다. 길다와 함께 작업장 구경을 했다. 루이폴의 아버지가 남긴 작품과 루이폴의 작품을 그의 아내의 해설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었다. 작업장 뿐만 아니라 게스트 룸, 식당, 정원, 어디에나 그들의 작품이 있었다.

사흘간 꿈 같은 휴식을 했다. 아이들이 집에 오는 날 너무너무 재미있으니 딱 1년만 더 살다 가자고 이야기했다. 아빠 엄마도 같은 마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