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 여행 셋째날. La Sucrière에 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설탕 (Sucre) 창고를 전시 문화 시설로 개조한 곳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어린왕자 발간 75주년을 맞아 생택쥐페리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생택쥐페리의 작품 중 '야간비행'을 좋아한다. 야간 비행을 막 시작하던 초창기에 비행사들이 야간용 계기도 없이 칠흙 같은 어둠 속에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어린왕자는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야간 비행은 몇몇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전시장에는 어린왕자와 관련된 전시물뿐만 아니라 조종사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물들도 맣았다. 당시 그가 썼던 비행 일지, 사막에 추락했을 때의 사진, 그 시절 비행기의 계기판들, 그리고 바다에서 발견된 그의 비행기. 아이들도 여우와 꽃의 이야기보다는 바다로 사라진 비행기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았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미디어 아트를 상영하는 공간이었다. 열린 책 모양의 스크린이 360도에 설치되어 있고 여기 어린왕자와 그의 삶을 주제로 한 영상이 상영된다. 음악도, 영상도 좋았다. 컨텐츠도 좋았겠지만 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전시장에서 나와 강변 산책 삼아 손강과 론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ONLY LYON" 조형물에 사진을 찍으러 갔다. 그런데 가는 길이 불어난 강물에 잠겨서 끊겨버렸다. 아이들은 홍수의 현장에 서 있다며 신이 났다.
Colfluence 쇼핑몰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기차를 타고 리옹 근교 비엔 Vienne에 다녀왔다. 호텔에서 좀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Vieux Lyon에 갔다. Vieux Lyon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리옹의 올드 타운이다. 좁은 돌길 양옆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들이 늘어 서있다.
리옹은 미식의 도시로 유명하다. 회사 동료 말에 의하면 리옹 사람들은 레스토랑에서 맛없는 음식이 나오면 화를 낸다고 한다. 리옹에 있는 나흘 동안 맛없는 음식을 보지 못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미식의 도시 답게 리옹에는 미슐랭 스타를 받은 고급 레스토랑도 많다. 하지만 진짜 리옹 음식을 먹으려면 부숑 Bouchon Lyonnais에 가야 한다.
20세기 초반 대가족을 위해 밥을 하던 리옹의 어머니들이 '이렇게 많이 하면 내다 팔아도 되겠다'고 생각을 하다가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그래서 테이블을 몇 개 놓고 값싸지만 푸짐한 가정식을 노동자들에게 팔기 시작한 것이 부숑의 유래라고 한다.
당시 값싸고 푸짐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재료는 주로 가축의 부속물이었다. 부숑에서는 그래서 내장, 관절, 소시지 같은 것이 주재료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프랑스가 먹고 정도가 아니라 세계에서 제일 잘 먹는 나라가 되었지만 그래도 부숑의 주재료는 그대로다.
우리는 부숑에는 가보고 싶지만 내장 요리를 먹을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식당 주인과 옆 테이블 사람과 섞여서 웃고 떠드는 부숑의 분위기는 그대로이나 일반적인 프랑스 요리를 파는 식당에 찾아갔다.
12월 31일 저녁식사인만큼 3주 전에 미리 예약을 했다. 그 다음주에 메뉴 선택을 하라고 연락이 와서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예약이 다 차 있었다. 리옹에서 저녁식사는 예약이 필수다. 메뉴는 7가지 코스 요리와 5가지 코스 요리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이왕 가는 거 7가지 코스 요리를 먹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버텨줄 것 같지 않아 5가지 코스로 선택했다.
달팽이 요리, 푸아그라, 본식으로는 생선, 후식으로 치즈와 타르트를 먹었다. 아내는 본식으로 소고기 요리를 먹고 아이들은 닭고기를 먹었다. 전식으로 나온 푸아그라가 정말 맛있었다. 생선도 훌륭하고 트러플 치즈도 향이 좋았다.
식사 중간 중간 담당 서버가 와서 말을 걸었다. 음식 이야기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 왔는지, 파리는 어떤 지, 리옹은 어떤 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옆 테이블에 혼자 온 손님은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서버가 지수에게도 "디저트 좋았어?" 라고 물어봤는데 "노!" 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솔직해서 좋다!" 하고 다 같이 웃었다. 2시간 가까이 저녁을 먹는 동안 아이들은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자리에 앉아서 버텨주었다.
10시가 다 되어서 호텔로 돌아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구시가지로 모여들고 있었다. 드레스를 입고 잔뜩 들뜬, 누가 봐도 파티를 하러 가는 사람들이다. 프랑스 사람들의 진짜 축제는 이제 시작이다. 우리 아이들도 올해는 12시까지 버텨서 카운트다운을 보겠다고 다짐했으나 30분을 남기고 잠들어버렸다.
다음 날. 리옹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해돋이를 보러 푸에브르 언덕에 가볼까 고민했는데 다행히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침대에서 뒹굴면서 푹 쉬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마지막으로 떼뜨도흐 공원 Parc de la Tête d'Or에 갔다. 리옹 북쪽에 있는 공원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큰 도심 공원이라고 한다.
공원 안에 무료 입장이 가능한 동물원도 있었는데, 날씨가 추워서 동물들이 다 우리 안에 들어가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도 춥기도 하고 어제 늦게 자서 잠이 안 깨는지 생각만큼 잘 뛰어놀지 않았다.
공원 근처 중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놀이터에서 좀 더 놀다가 파리로 오는 기차를 탔다. 오는 길에는 안개가 완전히 걷혀서 기차 창밖으로 멀리 알프스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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