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명의 흔적을 찾다 다니던 때가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이 남긴 것을 보러 이란에 가고, 이슬람 건축물을 보러 우즈베키스탄에 가고,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고대 도시의 잔해를 찾아 다니는 투어를 했다.
수백년 전 사람들이 뭔가를 남겼고 그게 지금까지 보존되어 지금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이 감동을 준다. 수백년 후 사람들도 똑같이 오늘날 우리가 남긴 것들을 보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 환경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은 달라진다.
리옹 여행을 준비하면서 읽은 가이드북에 근교에 로마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마을이 소개되어 있었다. 프랑스에는 500년, 1000년 된 건물들이 너무 흔해서 오래된 것들에 좀 심드렁해 지기는 했다. 하지만 로마 시대의 유적은 아직 보지 못했으니 리옹에 간 김에 가보기로 했다.
비엔느는 리옹에서 론강을 따라 남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로마 시대에 당시 규모로 꽤 큰 도시가 이곳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도시는 쇠퇴하고, 흙 속으로 사라져서 잊혔다가 1900년대
초반 발굴되었다.
발굴 현장에 지어진 박물관 Musse Gallo-Romain에 Vienne에서 나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유물들은 심드렁해 진 눈을 번쩍 띄웠다. 로마 시대의 작품들은 그 동안 프랑스에서 많이 봤던 프랑크족의 흔적과 많이 달랐다.
건물 바닥이나 벽을 장식했던 모자이크들이 특히 인상깊었다. 기하학 무늬, 동물, 식물, 사람들의 모습 등 주제가 다양했다. 2천년 전 사람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도 신기하고, 완벽하게 보존된 것도 신기했다.
박물관에는 유물 외에도 당시 도시의 모습과 집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델들도 많이 있어서 당시 생활상들을 그려볼 수 있었다.
‘아빠. 로마 사람들은 집에 수영장도 있었어. 좋겠다.’
‘그래. 로마 사람들은 참 부자였나 보다.'
박물관 밖은 발굴터이다. 집이 있던 곳, 길이 있던 곳, 시장 있던 곳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발굴 작업을 하던 고고학자들은 얼마나 설레었을까? 요즘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 그 감동을 느껴주기를 기대하고 '여기 길 밑에 수도관이 있어. 여기는 지금으로 치면 세탁소래.'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뛰어 놀기 바쁘다.
박물관을 다 보고 나와 Rhone 강 건너 구시가지에 갔다. 마을 중앙에는 1세기에 지어진 Augustus and Livia 신전이 있다. 이름대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그의 아내 리비아를 위해 지어진 신전이다.
작은 시골 마을 한가운데 거대한 신전이 우뚝 서있어서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2천년 전 건물이라고 보기에는 상태가 너무 완벽해서 최근에 복원이 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교회, 신전, 박물관 등 용도가 계속 바뀌기는 했지만 건물은 원형이 남아있다고 한다.
마을 뒤 언덕에는 만 명 이상이 수용 가능한 규모의 거대한 고대 극장이 있다. 기원전 40년에 건설된 것으로 그 당시에는 로마 제국에서 가장 큰 극장 중 하나였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12월 31일은 문을 닫아서 안에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여름에는 이 극장에서 2주간 Vienne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한다. 2천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극장에 왔을까? 그 역사를 이어가는 것은 연주자에게도, 관객에게도 특별한 경험일 것 같다.
로마 제국의 변방 프랑스 시골 마을에 이렇게 인상적인 건축물들이 남아다면, 과연 수도 로마에는? Vinne역에서 리옹역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파리-로마 비행기표를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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