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 & 노르망디 22

낭트 Nantes

포닉에 다녀오는 길에 낭트 Nantes에 들렸다. 낭트는 소설가 쥘베른이 태어난 도시다. 루아르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그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쥘베른이 19세기에 쓴 작품들은 SF소설의 시초라고 불린다. 대표작인 해저 2만 리와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혔다. 박물관에는 그의 유물과 오래된 책 판본들, 그리고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기계들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쉬다가 저녁 늦게 트램을 타고 구시가지에 나가봤다. 낭트는 주말에는 대중교통이 무료인 대신 구시가지에 차량 통행을 금지했다. 덕분에 여유 있게 골목골목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낭트는 행정구역상으로는 Pays de la Loire 지방에 속하지만 브르타뉴 Bre..

포닉 Pornic

혁명기념일 징검다리 연휴를 이용해 프랑스 서해안의 작은 마을 포닉 Pornic에 다녀왔다. 저녁 늦게 도착해서 항구에 있는 레스토랑에 찾아갔다. 식당 직원들과 손님들이 섞여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식사를 하는 중에 아내가 옆 테이블 아저씨가 우리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옆 테이블에는 혼자 온 중년의 아저씨가 와인 한 병을 시켜놓고 우아하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음식이 훌륭하네요" 말을 건네자 아저씨가 반가운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독일에 살고 있는 독일인이었다. 매 년 두 번씩 포닉으로 휴가를 온다고 한다. 포닉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물어보니 술술 나온다. 좋은 레스토랑, 좋은 음식, 친절한 사람들, 와인, 바다, 골프, 수다, 햇살........

노르망디 - 페캉, 에트르타, 르아브르

노르망디의 작은 항구 도시 페캉 Fécamp에 1박 2일 일정으로 출장이 잡혔다. 마침 아이들 여름 방학이 막 시작해서 다 같이 페캉에 가서 주말까지 놀다가 왔다. 노르망디의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매우 크다. 썰물 때 맞춰서 나가면 갯벌이나 갯바위에서 조개, 게 같은 바다 생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7월의 대서양은 수영을 하기에는 차갑지만 물에 발을 담그고 게를 찾아다니기에는 딱 좋았다. 어린이들은 나흘 내내 아침 저녁으로 바다에 나갔다. 파도를 쫓고, 모래 놀이를 하고, 갯바위의 돌을 뒤집고 다녔다. 20분만 찾아도 손바닥만 한 게를 서너 마리는 잡을 수 있었다. 불가사리, 새우, 작은 물고기까지 원 없이 잡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풀어주었다. 노르망디의 해산물은 파리에 비하면 훨씬 싸고 신선하다..

벡 수도원 Abbaye du Bec

아이들과 노르망디 Cerza 동물원에 다녀오는 길에 벡 수도원 Abbaye du Bec 에 들렀다. 수도원 안에 들어가려면 가이드 투어를 해야 해서 투어 시간에 맞춰서 갔다. 아이들에게는 재미없는 코스지만 동물원에서 1박 2일을 놀았으니 군말 없이 따라와 주었다. 가이드 투어에는 우리와 프랑스인 노부부 한쌍이 참여했다. 가이드 아저씨가 설명을 하는 중간중간 우리를 위해 영어로 요점정리를 해주었다. 프랑스 역사책을 최근에 읽어서 프랑스어 설명도 꽤 많이 들을 수 있었다. 11세기에 수도원이 처음 설립된 이후 정복왕 윌리엄 시절 노르망디공국과 잉글랜드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고, 학교로 쓰이기도 했다. 한때 파리의 노트르담과 견줄 만큼 거대한 교회가 있었지만 무너졌다. 그래서 수도사들이 다 같이 식사를 하던 ..

노르망디 동물원 호텔 Cerza Safari Lodge

코로나 격리가 끝나자마자 2주 연속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아내에게 쉴 시간을 좀 줘야 할 것 같아서 주말에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기로 했다. 바다에 가려고 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노르망디 Cerza 동물원으로 급하게 적지를 변경했다. ​ Cerza 동물원 안에는 숙박 시설 Cerza Safari Lodge가 있다. 숙소에서 동물원의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고, 왈라비, 사슴, 토끼 같은 온순한 동물들은 숙소 마당에 풀어놓아서 오며 가며 보고 먹이도 줄 수 있다. ​ 숙소가 동물원에 바로 붙어 있어서 숙박 기간 동안 언제든 출입할 수 있다. 짙눈개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눈이 잠시 그친 틈을 타서 동물원에 들어갔다. 날씨가 안 좋으니 손님이 없어서 조용하고 좋았다. Cerza 동물원에는 동물원..

노르망디 - 디에프 Dieppe

지수와 약속한대로 여름이 가기 전에 다시 바다에 갔다. 여름 노르망디에 숙소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호텔 사이트와 공유숙박 사이트를 수시로 드나든 끝에 디에프에 다른 사람이 취소한 숙소를 예약하는데 성공했다. ​디에프는 자갈 해변이라 아이들이 잘 놀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썰물때는 갯벌이 드러났다. 썰물 때마다 바다에 나갔다.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고 파도를 쫓아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이번에도 작은 물고기, 새우, 소라게를 잔뜩 잡아서 관찰했다. 소라게가 모래를 파고 들어가는 건 내가 봐도 신기했다. 윤수가 근처에 있던 동네 꼬마에게 게 잡는 법을 배워왔다. "아빠. 게는 햇빛을 싫어해서 바위 밑에 숨어있어. 그래서 바위 밑을 뒤지면 많이 나와." "아까 형이 ..

노르망디 - 울가트 Houlgate

7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전. 프랑스인 동료들과 화상 회의를 했다. 일 이야기는 순식간에 끝나고 다들 여름 바캉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동료가 주말에 뭐하는지 묻길래 이 회의가 끝나면 울가트에 간다고 이야기했다. 노르망디에서 회의에 참석한 동료가 환호했다. "브라보! 울가트 정말 좋아. 붐비지도 않고 깨끗하고 바다도 예쁘지. 도빌, 까부르 그런데는 파리 사람들이나 가는 거야. 우리 노르망디 사람들은 울가트에 가." 파리에서 2시간을 조금 넘게 달려 울가트에 도착했다. 노르망디 사람 말 대로 근처 도빌 보다 훨씬 작고 조용했다. 한여름의 바다라고 하기에는 정말 한산했다. 주말 내내 날씨가 궂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울가트에 온 주목적은 수렵 채집 활동이다. 2박 3일 동안 매일 갯벌에 나가 게와 조개를..

노르망디 - 도빌, 트루빌, 까망베르

도빌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해서 놀이터에도 잘 안가는 집돌이 지수가 어쩐 일인지 바다에 모래놀이 하러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급하게 노르망디 여행을 계획했다. 모래 놀이가 목적이니 넓은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도빌 Deauville에 갔다. 도빌 해변의 모래사장은 길이가 3km가 넘고 폭이 가장 넓은 곳은 300m나 된다. 모래사장을 한참 걸어야 바닷물에 발을 담글 수 있었다. 해변에 나온 사람들은 모래 놀이를 하고, 연을 날리고, 축구를 하고, 도시락을 먹고. 요가를 하고, 말을 탔다. 더러는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발이 시리도록 물이 차가운데도 맨몸이었다. 모래가 곱고 깨끗하고 바닷물도 깨끗해서 아이들이 놀기 좋았다. 도빌에 머무르는 사흘 동안 매일 바다에 나가 모래성을 쌓고 조..

노르망디 - 에트르타, 옹플레르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노르망디는 초록색 평원, 자갈 해변, 그림 같은 해안 절벽 등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하는 곳이다. 파리에서 가까워 파리 사람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기도 하다. 우리 가족도 주말마다 노르망디로 여행을 자주 다녔다. 특히 비 필수 업종은 모두 문을 닫고 엄격한 거리두기를 시행했던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는 노르망디의 해변이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좋은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에트르타 파리에서 노르망디로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파리를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넓은 들판, 초록 평원, 작고 예쁜 마을들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고속도로를 타고 그냥 휙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풍경이라 중간중간 국도로 빠져나와 시골길을 달린다. 에트르타는 하얀 석회..

생말로 2

노르망디와 브르타뉴는 2차 대전 때 유럽 본토에 상륙하려는 연합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나치가 치열하게 싸운 격전지다. 그래서 당시의 흔적을 보존한 박물관과 사망한 병사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많다. 생말에 있는 전쟁기념관 MEMORIAL 39-45도 그중 하나다. MEMORIAL 39-45에는 독일군이 건설한 해안 벙커가 남아있다. 생말로 전투의 기록을 전시해 놓은 기념관은 아쉽게도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았다. 하지만 야외 전시물 만으로도 전쟁의 참상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반으로 갈라진 대공포, 형편없이 뜯겨 나간 시멘트 벽, 그리고 가장 압권은 철제 벙커 뚜껑에 남아 있는 수많은 포탄의 흔적들이었다. 벙커를 공격하던 연합군은 얼마나 많이 희생당했을까? 벙커 안에 있던 병사는 이렇게 많은 공격을 받는 동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