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근교/여행 22

파리 소르본 대학 견학, 유럽 문화유산의 날

1년에 한번 있는 유럽 문화유산의 날에는 평소에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는 유적지나 공공기관, 역사적 건물이 무료로 공개된다. 엘리제궁이나 국회의사당 같은 주요 기관 뿐만 아니라 동네 시청까지 다양한 곳에 방문할 수 있다. 우리는 올해 소르본대학교에 가보았다. 먼저 Pierre and Marie Curie Campus 를 방문했다. 이곳은 캠퍼스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과학 학과들이 모여있는 캠퍼스다. 1970년대에 설립되어 고풍스러운 메인 캠퍼스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광물박물관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오후에나 문을 연다고 해서 대신 지질학과 도서관을 방문했다. 화산과 바다에 대한 책, 고지도를 구경하고 엽서와 책갈피를 선물로 받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게시판..

파리 근교 몽모헝시 숲 - Forêt de Montmorency

일요일. 점심을 먹고 귀찮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차에 태워서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몽모헝시 숲 Forêt de Montmorency에 갔다. 날씨가 좋아 나들이 온 사람들이 많았다. 중세 시대에 지어진 작은 성, Château De La Chasse 앞 잔디밭에는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이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성을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 나무 사이로 바스럭거리는 소리가 자꾸 나서 긴장했는데, 알고 보니 밤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밤 껍데기를 까보니 동글동글 작고 귀여운 알밤이 들어있었다. 아이들에게 발로 밤송이를 까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숲을 돌아 다니며 정신없이 밤을 주웠다. 제일 크고 잘 생긴 밤 몇 개를 골라 가방에 넣고 나머지는 다시 숲에 던져놓았다. 야생 동물이 있을 것 같..

오베르 쉬르 우아즈 Auvers-Sur-Oise

작년 이맘때 파리에 혼자 살던 시절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갔었다. 반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작은 마을이다. 마을 뒤로 올라가면 그가 을 그린 밀밭이 있다. 나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밀밭을 봤는데, 회색 구름 아래 거대하게 펼쳐진 노란 물결에 완전히 빨려 들었다. 그 후로 일 년 동안 프랑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더 큰 밀밭을 수도 없이 많이 봤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다. 그래서 올해 가족과 다시 가봤다. 노르망디 여행을 가는 길에 들릴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밀이 노랗게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황금 들판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마을에 도착. 입구에 차를 세우고 바로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밀밭이 있어야 할 곳에 옥수수가 있다. 길은 잘못..

지앙 Gien, 바르비종 Barbizon

결혼할 때 샀던 커피잔 세트를 전부 깨 먹고 짝도 맞지 않는 머그잔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빨리 치우고 아이들을 재워야 하니 예쁜 커피잔에 담고 씻고 할 여유가 없기도 했다. 이제 아이들도 좀 커서 여유도 생겨서 커피잔을 새로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침 루아르 강변에 있는 지앙 Gien이라는 마을에 가면 프랑스 그릇 브랜드 지앙의 아울렛에 있다고 해서 소풍 겸 가봤다. 파리에서 지앙까지는 차로 2시간 정도 걸렸다. 그릇을 여기저기 수북하게 쌓아놓고 파는 본격 아울렛이었다. 그런데 분위기와는 달리 가격은 싸지 않았다. 정가가 비싸서 할인을 한 가격도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오히려 비싸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사고 싶은 것은 너무너무 많아서 가격이 부담되지 않았으면 잔뜩 들고 왔을지도 모..

트루아 Troyes

'holy city of stained glass'라고 불리는 트루아. 작은 도시 안에 교회와 성당이 10개가 있다. 교회마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특색이 다 달라서 모두 가봐도 지루하지 않다고 한다. 실내 조각이 예술이었던 Église Sainte-Madeleine,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Basilique Saint-Urbain, 웅장한 Saint-Pierre Saint-Paul 대성당까지 보고 아이들은 "성당은 이제 그만"을 외쳤다. 억지로 끌고 다니는 것은 아이들도 부모도 힘든 일이니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해 준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다 똑같은 교회 구경은 이제 그만하고 시청 앞 광장 카페에서 와플을 하나씩 사줬다. 나는 샹파뉴에 왔으니 샹파뉴 치즈 Chaource를 먹었다. 부드럽고 향도 강하지..

프로뱅 Provins

토요일 아침. 거의 일주일 만에 해가 떴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앞으로도 일주일 동안 내리 비가 온다고 한다. 기회가 있을 때 햇볕을 쬐러 나가야 한다. 에트르타, 퐁텐블로, 바르비종 파리 근교에 갈만한 곳을 검색하다가 지수 친구네가 프로뱅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따라나섰다. 프로뱅의 구시가지는 11세기 요새 도시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던 성벽에 먼저 올라가 봤다. 성 안쪽에는 마을이, 밖으로는 초원이 펼쳐진다. 성벽은 12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그 옛날 왜 이렇게 높은 성을 쌓아야만 했을까? 성에서 내려와서 마을에 들어갔다. 30분이면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작지만 예쁜 마을이었다. 프랑스 어디를 가나 마을 가운데 광장이 있..

샤르트르 Chartres

매일 밤 샤르트르 Chartres의 주요 유적지들은 빛으로 된 옷을 입는다. 샤르트르 대성당과 바로 옆 미술관에는 건물 외벽에 비춘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진 공연이 펼쳐진다. 그 외에도 다리, 교회, 거리 곳곳에 화려한 조명을 비춘다. 오후 늦게 샤르트르에 도착해서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밤 9시, 조명이 켜지는 시간에 맞춰 나갔다. 샤르트르 대성당 외벽에 프랑스의 과거와 오늘을 주제로 한 영상을 비추고 있었다. 별로 기대 안 했는데 막상 보니 정말 대단했다. 아이들도 우와! 우와! 탄성을 지르면서 봤다. 성당의 서쪽은 빛으로 건물을 채색해 놓았다. 수많은 조각상들이 모두 색색의 옷을 입었고 얼굴 표정과 머리카락까지 표현해 놓았다. 조명 옷이 그림을 그려놓은 것처럼 선명했다. 빛 공연이 있는 장소들을 찾아 ..

Chateau de Maintenon 맹트농 성

루이 14세가 정부였던 맹트농 부인에게 하사했다는 맹트농 성. 그동안 가본 다른 성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지만 그래서 정말 사람이 살던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성 안에 17세기에 사용되었던 가구와 의복들도 전시되어 있다. 크기가 요즘으로 치면 유아용품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25세기 사람들이 내 옷을 보면 유아복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인류는 이제 클 만큼 컸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성에 딸린 정원에서 간식을 먹고 곤충도 잡고 송사리도 잡으면서 놀았다. 정원 건너편에는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으로 물을 끌어가기 위해 만들던 수도교의 흔적이 남아있다. 베르사유 궁전까지 거리가 50km는 될 텐데,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수도교를 건설하기 위해 동원된 사람이 몇 명인지 이야기를 듣던 아..

지베르니 Giverny

모네의 정원으로 유명한 지베르니에 다녀왔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탈 수도 있지만 한여름에 아이들과 가기에 적당한 방법은 아니다. 차를 하루 렌트해서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어 모네의 정원에 도착했다. 예약 시간보다 1시간 가까이 늦게 도착해서 입장을 못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아무 문제없었다. 평일 오전에, 예약 입장만 가능한데도 여름휴가 시즌이라 사람이 많았다. 모네의 정원은 정말 예뻤지만 아이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덥다, 목이 마르다, 개구리가 없다, 배고프다 계속 칭얼대는 통에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아빠도 초록이 얼마나 좋은 건지 알게 된 건 얼마 전인데 너희들한테 정원을 느끼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 다음에 너희들 학교 갔을 ..

동물원 La Tanière - Zoo refuge

샤르트르 근교에 특별한 동물원이 있다. La Tanière - Zoo refuge는 동물원이자 버려진 동물들을 데려와서 보호하는 쉼터이다. 사자, 코끼리, 말, 원숭이, 물개 등 살고 있는 동물의 구성은 다른 동물원과 비슷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동물들을 소개하는 표지판이다. 이름, 서식지, 나이, 먹이 등 일반적인 정보에 추가하여 어떻게 여기 오게 되었는지가 적혀있었다. 서커스에서 야생동물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버려진 동물들이 가장 많았다. 그 외에도 주인이 죽어서 돌봐줄 사람이 없는 동물, 다쳐서 버려진 동물, 실험실에서 은퇴한 동물 등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이곳에 모였다. 이곳은 프랑스의 다른 동물원에 비하면 시설이나 환경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구조가 첫 번째 목적이니 이해가 된다. 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