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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안달루시아 - 네르하 Nerja

그라나다에서 1시간 조금 넘게 달려서 안달루시아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네르하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원 없이 놀게 해 주고 집에 갈 계획이었다. 네르하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유럽의 발코니다. 야자수가 심어진 광장 끝에 탁 트인 전망대가 있다. 지중해에 왔으니 뜨거운 태양, 쨍한, 햇살, 파란 하늘을 기대했는데 날씨가 따라주지 않았다. 짙은 구름, 매서운 바람, 높은 파도, 겨울의 속초 바다 느낌이었다. 그래도 전망은 정말 좋았다. 말라가 해변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일출과 일몰 때 정말 멋질 것 같은데 아쉽게도 우리가 머무는 사흘 동안 한 번도 아침 저녁에 해를 볼 수 없었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도 높지만 그래도 모래놀이는 계속되어야 하니 해변에 갔다. 유럽의 발코니 바로 옆에도 해변이 있지만 너..

스페인 안달루시아 - 그라나다

해 질 녘 붉은색으로 물드는 알함브라를 보기 위해서 저녁때 맞춰서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하지만 비가 오고 흐린 날씨 때문에 석양은 볼 수 없었다. 아쉽지만 말라가에 있는 3일 내내 날씨가 좋았으니 그걸로 됐다. 그라나다 대성당 앞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알함브라 궁전 맞은편 언덕 알바이신 지역에 호텔을 예약했다. 알함브라 궁전이 보이는 멋진 전망의 호텔이지만 차로 접근할 수 없어 걸어가야 했다. 돌이 깔린 미로 같은 골목길은 구경하기에는 재미있지만 여행가방을 끌고 올라가기에는 무리다. 그래서 하루치 짐만 배낭에 따로 넣어서 호텔에 갔다. 비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워서 호텔까지 올라가는데 고생을 좀 했다. 호텔의 공용 테라스에서 보는 알함브라 궁전은 정말 아름다웠다. 비를 맞고 배낭을 메고 걸어온 수고가..

스페인 안달루시아 - 말라가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할 때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중간에 들려야 한다. 안달루시아 여행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해변휴양지 말라가에 갔다. 아이들이 세비야와 그라나다를 별 불평 없이 따라다닌 것은 그다음에 바닷가에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2월 말 말라가의 기온은 10도에서 20도 정도였다. 햇살이 따듯해서 오후에는 초여름처럼 느껴졌다. 바닷물은 아직 차서 들어가서 수영을 하기는 힘들었지만, 발을 담그고 첨벙거리고 놀 정도는 되었다. 물론 아이들은 놀다 보면 발만 담그지 않는다. 파도와 모래만 있으면 아이들끼리 잘 노니 어른도 편하게 쉴 수 있다. 모래성을 만들고, 모래 속에 들어가 찜질을 하고, 바다에 돌을 던지고, 파도와 달리기를 하고, 2박 3일 내내 바다에서 신나게 놀았다. 둘째 날 오전에는 피카소..

스페인 안달루시아 - 세비야 2

세비야 여행 둘째날. 아침 일찍 스페인 광장에 갔다. 스페인 광장은 1929년 이베로-아메리카 박람회(Ibero-American Exposition)를 위해 지어졌다.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에게 스페인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광장은 당시 건축 기술을 총동원하여 웅장하고 화려하고 아름답게 지어졌다. 지금 내가 봐도 탄성이 나올 정도이니, 100년 전 남아메리카에서 온 사람은 정말 깜짝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광장이 너무 거대하다보니 사람들이 광장을 채우지 못해 휑한 느낌이다.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고, 중간에 만나서 이야기하고, 벤치에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는 곳이 좋은 광장이다. 이런 면에서는 실패한 건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광장에는 스페인의 각 도시의 역사가 그려진 타일..

부르고뉴 와인 루트 - 샤블리, 퓌세, 본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알프스 스키장에 가는 길. 파리에서 알프스에 가려면 프랑스의 대표 와인산지인 부르고뉴를 관통한다. 고속도로 대신 멋진 포도밭을 볼 수 있는 와인 루트를 달려보라는 프랑스인 친구의 조언에 따라 와인 산지인 샤블리Chablis와 퓌세 Fuisse에 들렸다. 첫번째로 도착한 곳 샤블리는 아내가 처음으로 맛있다고 했던 와인의 생산지다. 샤블리 일대에서 전망이 가장 좋다는 Courgis 마을에 갔다. 겨울이라서 포도나무는 가지만 앙상했다. 이렇게 앙상한 나무에 잎이 빼곡하게 나고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연휴라 와이너리들이 모두 문을 닫아서 시음은 해보지 못했다. 고속도로를 다시 타고 2시간을 달려 이번에는 마콩 Macon 지역의 퓌세 Fuisse 마을에 들..

리옹 근교 여행 - 비엔느 Vienne

고대 문명의 흔적을 찾다 다니던 때가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이 남긴 것을 보러 이란에 가고, 이슬람 건축물을 보러 우즈베키스탄에 가고,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고대 도시의 잔해를 찾아 다니는 투어를 했다. 수백년 전 사람들이 뭔가를 남겼고 그게 지금까지 보존되어 지금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이 감동을 준다. 수백년 후 사람들도 똑같이 오늘날 우리가 남긴 것들을 보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 환경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은 달라진다. 리옹 여행을 준비하면서 읽은 가이드북에 근교에 로마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마을이 소개되어 있었다. 프랑스에는 500년, 1000년 된 건물들이 너무 흔해서 오래된 것들에 좀 심드렁해 지기는 했다. 하지만 로마 시대의 유적은 아직 보지 못했으니 리옹에 간 김에 가보기로 했다. 비엔느는 리옹..

리옹 여행 2 - La sucriere, 부숑, 떼뜨도흐 공원

리옹 여행 셋째날. La Sucrière에 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설탕 (Sucre) 창고를 전시 문화 시설로 개조한 곳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어린왕자 발간 75주년을 맞아 생택쥐페리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생택쥐페리의 작품 중 '야간비행'을 좋아한다. 야간 비행을 막 시작하던 초창기에 비행사들이 야간용 계기도 없이 칠흙 같은 어둠 속에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어린왕자는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야간 비행은 몇몇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전시장에는 어린왕자와 관련된 전시물뿐만 아니라 조종사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물들도 맣았다. 당시 그가 썼던 비행 일지, 사막에 추락했을 때의 사진, 그 시절 비행기의 계기판들, 그리고 바다에서 발견된 그의 비행기. 아이..

리옹 여행 1 - Musée des beaux art, 미니월드, 푸르비에르 언덕

크리스마스 방학 기간에 프라하에 가려고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그런데 12월 들어 체코의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아졌다. 신규 확진자 수와 사망자수가 급증했다. 크리스마스가 절정이 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여행을 취소했다. 그리고 대신 리옹에 다녀왔다. 리옹역 근처 호텔에 짐을 풀고 리옹의 중심부 Presque'ile 지역에 갔다. 리옹을 관통해 흐르는 론강과 손강이 만나 반도 모양의 지형이 만들어졌고 그래서 반도 Presqur’ile라고 부른다. 거대한 분수가 설치된 Place des Terraux 광장을 둘러보고 미술관 Musée des beaux art에 갔다. 로마, 이집트 등 고대 유적부터 로댕, 피카소까지 알차게 전시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그림 모네의 '워털루와 차링크로스 다리'가 있어서 ..

스페인 안달루시아 - 세비야 1

“승객 여러분. 우리는 지금 피레네를 넘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세비야로 향하는 비행기. 창 밖으로 눈 덮인 피레네 산맥이 보였다. 산맥 너머 스페인 쪽은 프랑스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세비야의 공기는 파리와 완전히 달랐다. 기온 차이는 10도 정도인데 체감 상으로는 그것보다 훨씬 더 따듯하게 느껴진다. 아내에게 햇살의 품질이 완전히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남쪽으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2시가 조금 넘어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우리에게는 늦은 점심이지만 스페인에서는 보통 점심 먹는 시간이다. 세비야 대성당 앞 타파스 식당들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빈자리가 있는 식당을 겨우 찾아들어가 타파스 몇 개를 주문했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먼저 나온 빵부터 먹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포르투 3

아침 일찍 렐루 서점 Livraria Lello에 갔다. 1881년에 문을 연 서점으로 세계에서 인테리어가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작가 조엔 롤랭이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쓸 때 영감을 받았다고 하여 유명해졌다. 해리포터 성지인만큼 관광객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포르투에 온 첫날 문 닫는 시간에 가면 사람이 별로 없지 않을까 생각하고 갔다가 허탕을 쳤다. 그래서 여행 마지막 날 문 여는 시간인 9시 30분에 예약을 하고 입장 20분 전에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지만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다. 우아한 곡선의 중앙 계단, 오래된 서가, 해가 잘 드는 천장, 아름다운 서점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니다 보니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가장 ..